‘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은 조선시대 호적대장을 통해 복원한 천민의 성장사다. 조선시대의 노비가 200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 각고의 노력 끝에 신분 상승을 이루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철저한 고증을 거쳐 재구성한 책이다. 덤으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조선이란 나라를 왕조사가 아닌 생활사 입장에서 들여다볼 기회를 갖는다는 점이다.
1717년 경상도 단성현 호적대장에 등장하는 김흥발이란 인물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그의 아버지 김수봉은 양반 심정량의 외거노비로, 언제부터 노비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김수봉은 슬하에 아들 김학, 김흥발, 김개똥이를 두었다. 우리가 조선조를 신분제 사회로 이해하는 것처럼 당시 전 인구의 30% 정도가 노비로, 노비의 노동력에 의해 굴러가는 사회였다. 노비제도는 가혹했다. 부모 가운데 사람이라도 노비 출신이면 어머니의 주인에게 귀속되는 ‘종모법(從母法) ’이 시행됐다. 노비의 삶이 어떠하였는지 상세히 알 수는 없지만, 어느 양반집이든 도망 노비가 많았던 점을 염두에 두면 삶이 고단하기 이를 데 없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조선조를 지나치게 미화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조선의 실상을 여과 없이 이해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도움이 되는 책이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조선시대에 노비로 태어나면 두 가지 길이 있었다. 신분의 굴레를 숙명으로 받아들인 다음 각고의 노력으로 신분 상승의 길을 도모하는 게 하나였다. 또 다른 것은 도망 가는 방법이다.
저자는 양반의 길에 대해 “양반 심정량은 부모의 경제력과 후원을 바탕으로 학문에 힘쓰고 과거급제를 통해 관료 진출을 꿈꾸는 양반들의 삶을 뒤따라갈 가능성이 컸다”고 말한다. 반면에 노비의 길은 아주 달랐다. “김수봉은 신분이라는 억압을 뚫고 삶의 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처절하게 기울이든지, 아니면 노비라는 주어진 조건에 만족하며 살지를 결정해야 한다.”
주인집의 토지를 경작해서 일정한 소출을 바치는 것 외에 수공업 등 다양한 방법으로 김수봉은 돈을 모았다. 그런 노력 끝에 1678년 노비였던 수봉은 1717년에 자신은 물론이고 아들들까지 모두 평민으로 신분을 상승하는 데 성공한다. 죽도록 노력해 얻은 경제력을 이용해 그는 병자호란과 임진왜란으로 국가 재정이 어려워졌을 때 기회를 노린다. 당시 곡식을 국가에 바치면 노비 신분을 면할 수 있었다. 조선 왕조 후기 최대 기근이라 불리는 ‘경신대기근’과 ‘을병대기근’ 때 그는 재산을 바친 다음 먼저 노비 신분을 벗고 그다음에 또 재산을 바쳐 ‘통정대부’라는 공명첩을 받는다.
그러나 김수봉가(家)의 노고는 계속 이어진다. 양반은 군역을 면제받았지만 평민에게는 가혹한 군역을 물리는 나라가 조선이었다. “양반의 자제들은 점차 가벼운 군역을 지다가 그것마저 회피해 나갔다. 따라서 조선 후기가 되면서 군역은 평민이 지는 것으로 고착되었다.”
수봉의 후손들은 1759년 또 한번의 신분 상승에 성공한다. 평민과 양반의 중간층에 주어지는 직역, 즉 ‘업무와 업유’라는 군역 면제자의 신분까지 도달하게 된다. 신분 상승에 대한 의지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기어코 양반이 되는 길로 달려간다. 김수봉의 후손들이 양반이란 칭호를 얻은 것은 1831~1867년 사이다. 김수봉으로부터 5대에서 6대에 이르러 마침내 꿈이 이뤄진다. 그러고 나서 30여 년이 흐른 뒤 신분제 폐지를 담은 갑오개혁이 발표된다. 그가 속했던 양반가의 후광도 벼슬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아 퇴색하고 만다. 짧지만 울림이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