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 이란 제재 여파에 은행 초과지급준비금이 3000억원을 육박하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금융당국이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에 대한 제재 절차에 착수하지 않기로 했지만 시중은행들 사이에서는 혼선을 빚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밖에도 외국계은행들을 중심으로 초과지준을 쌓았다.
지급준비제도란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대량 예금인출 등 비상상황을 대비해 지급준비율이라는 일정비율로 중앙은행에 예치하도록 의무화한 제도다. 장기주택마련저축과 재형저축은 0%, 정기예금 및 적금, 상호부금, 주택부금, 양도성예금증서는 2%, 기타예금은 7%의 지준율이 적용된다. 초과 지준금에 대한 이자는 없다.
은행별로는 일반은행이 2920억2460만원으로 역시 역대 최대치를 보였다. 직전 최대치는 5적립월 2226억9970만원이었다. 산업은행과 농협 등 특수은행도 14억1800만원을 기록했다. 이는 2016년 10적립월 기록했던 446억8120만원 이후 1년11개월만에 최대치다.
이와 관련해 한은 관계자는 “멜라트은행이 초과지준을 많이 쌓은데다 외은을 중심으로 초과지준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복수의 시중은행 자금부 관계자들은 “은행들 입장에서는 여러 변수로 인해 10억원 단위로 초과지준을 쌓는게 보통이다. 잘못 계산할 수 있는 요인을 방지하기 위해 때론 200~300억원씩 쌓기도 한다”며 “미국의 대 이란 제재에 따른 혼선으로 멜라트은행이 초과지준을 많이 쌓았다. 다만 1000억원 규모는 아니라고 들었다”고 전했다.
이를 종합하면 우선 10월경 미국의 대이란 제재조치와 이후 우리나라가 예외국 지정을 받기까지 시중은행들 사이에서 혼선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세컨더리 보이콧(3자 제재)을 우려해 한때 일부 시중은행들 사이에서는 이란 유학생들이나 거주민들 계좌까지 동결시키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시중은행과 거래가 막힌 멜라트은행 서울지점 입장에서는 자금을 한은에 쌓아 놓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 멜라트은행을 제외하고도 시중은행에서 2000억원 가량을 초과지준으로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직전 최대치를 기록했던 5적립월에도 중국계은행을 중심으로 초과지준을 쌓았었다.
지준금을 많이 쌓는다는 것은 은행들이 그만큼 남는 자금에 대해 운용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우선 자금조달 비용이 마이너스까지 떨어져 굳이 자금운용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 수 있다. 최근과 같이 FX스왑(외환스왑) 포인트가 마이너스로 떨어진 상황에서는 이자를 받으면서 자금을 빌려오는 것도 가능하다.
신용한도(리밋)가 적거나 지준 마감일 무렵 여타 은행의 자금사정이 풍부해 마땅히 자금을 돌릴 곳이 없을 때도 발생한다. 최근들어 자주 초과지준 규모가 급증하는 것도 중국계와 일본계 은행이 국내 영업을 강화하는 가운데 신용한도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