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과 전통을 중시해온 영국 사람들은 뉴턴의 이 말을 동전에 새겨 일상생활의 모토로 삼아왔다. ‘모르면 경험에 물어라! 전통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지 마라!’ 이런 뜻을 매일 쓰던 동전에 새겨 경험과 전통을 이어온 거다. 영국에서 ‘경험주의 철학’이 괜히 발전했겠나. 데이비드 흄과 더불어 경험주의 철학자 명단 맨 앞줄에 등장하는 존 로크(1632~1704)는 뉴턴과 친밀한 사이였다.
경험을 새로운 생각, 새로운 눈뜸을 만들어주는 원천임을 전파한 사람은 물론 뉴턴만이 아니고 영국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뉴턴보다 약 100년 뒤 독일에서 태어나 뉴턴의 광학이론에 시비를 걸기도 했던 ‘인류 최고의 천재’ 괴테(1749~1832)는 아예 ‘천재=독창성’이라는 공식을 무시했다. 괴테는 “에너지와 힘과 의욕을 제외한다면 우리 자신의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것이 무엇이 있겠냐”고 말했다. ‘무엇을 해야겠다는 의욕, 이를 뒷받침할 힘과 에너지만 있으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모아서) 자신의 (독창적인) 것을 만들 수 있다’는 뜻 아닌가.
역시 독일 태생으로 괴테에 버금가는 천재였던 아인슈타인(1879~1955)도 “새로운 아이디어는 갑자기, 어떻게 보면 직관적인 방식으로 찾아온다. 하지만 직관은 이전의 지적 경험의 결과물에 불과하다”고 뉴턴과 괴테에 호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이 글로, 연설로 써먹었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라’라는 번역서가 2003년에 나온 후 3000건 이상이 검색된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라’에 이어 ‘거인의 어깨를 빌려라’라는 토종 책도 나왔다. 처세술 비슷한 걸 가르치는 책이다. 경험이 중요한데도 실생활에서는 경험이 대접받지 못하기 때문에 이처럼 많은 책과 글이 나왔을 거다.(나도 이 글이 두 번째다!)
아니면 아직 ‘경험’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일지도 모르겠다. 경험은 연륜이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게 경험이다. 이런 의미에서 경험을 설명한 말로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쓴 쿤데라(1929~ )의 것이 귀에 쏙 들어온다. 쿤데라는 “출생에서 죽음 사이를 잇는 선 위에 관측소를 세운다면 각각의 관측소에서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 그 자리에 멈춰 있는 사람의 태도도 변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 사람의 나이를 이해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고 썼다. 쿤데라가 ‘나이’라고 쓴 자리에 ‘경험’이라고 써도 뜻은 통한다. 하지만 쿤데라도 이 나라에 오면 꼰대 대접을 받을 거다. 나이 대접하라면 곧바로 꼰대라고 하는 곳이니까.
여러 가지 이유로, 여러 분야에서 경험자, 나이 든 자들이 퇴출되고 있다. 새로운 세상,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제일 많다. 쫓아내는 사람들, 천재도 아니고 경험도 없는 그들은 사람들을 쫓아내면서 어떤 경험을 쌓게 될까.
(‘거인의 어깨’는 뉴턴의 독창적인 표현이 아니다. 12세기 중반 “난장이가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면 거인보다 멀리 볼 수 있다”고 한 ‘샤르트르의 베르나르’라는 프랑스 신학자가 저작권자다. 뉴턴은 유럽 지식인 사회를 떠돌던 이 말을 자기 것으로 ‘선점’해낸 것이다. 그래서인지 영국 2파운드 동전에 ‘뉴턴’이라는 글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