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공유경제의 무한한 가능성…공유주방, PC방처럼 시간제로

입력 2019-02-08 19:38 수정 2019-02-09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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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사 이영민(39) 씨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우연히 공유주방이란 개념을 알게 됐다. 그는 신메뉴 개발을 위해 2개월 동안 공유주방을 시간 단위로 사용할 계획이다. (나경연 기자 contest@)
▲제빵사 이영민(39) 씨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우연히 공유주방이란 개념을 알게 됐다. 그는 신메뉴 개발을 위해 2개월 동안 공유주방을 시간 단위로 사용할 계획이다. (나경연 기자 contest@)

"주방, 여자의 자존심이니까요."

배우 이영애가 산소 같은 목소리로 속삭이면, 세상 모든 엄마들은 부엌의 냉장고를 쳐다봤다. 엄마들은 이영애의 냉장고 광고를 본 날이면 어김없이 주방을 닦고, 또 닦았다.

이제 엄마의 자긍심을 누구나 대여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시간당 1만 원을 지불하면, 주방 설비와 기기가 완벽하게 갖춰진 부엌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이용할 수 있다. 바야흐로 '공유주방' 전성시대다.

8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 위치한 '위쿡'. 넓은 공간의 공유주방에는 레스토랑이나 식당에서 사용하는 업소용 규모의 그릴, 오븐, 발효기, 반죽기, 튀김기, 제빙기 등의 조리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제빵사로 일하고 있는 이영민(39) 씨는 신메뉴를 개발하기 위해 위쿡 공유주방을 찾았다. 이 씨는 "현재 피자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회사가 베이커리 쪽으로 신메뉴를 출시하려고 한다"면서 "아직 회사에 주방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당분간 이곳에서 요리 연습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과제빵을 전공한 오유진(34) 씨는 공유주방의 가장 큰 장점을 임대료와 같은 고정비용 절감이라고 설명했다. (나경연 기자 contest@)
▲제과제빵을 전공한 오유진(34) 씨는 공유주방의 가장 큰 장점을 임대료와 같은 고정비용 절감이라고 설명했다. (나경연 기자 contest@)

◇청년 창업 문턱 낮추는 '효자템'

공유주방은 창업을 앞둔 청년들에게 효자 아이템이다. 이 씨처럼 제대로 된 주방을 갖추기 힘든 경우, 원하는 시간에 필요한 시간 만큼 효율적으로 주방을 이용할 수 있다. 피시방 같이 시간·월 단위로 요금을 지불한다. 보증금을 받지 않아 비용 부담 없이 사용하기 적절하다.

정고운 위쿡 마케팅 팀장은 "창업하기 전, 메뉴를 개발하기 위해 공유주방을 이용하는 분이 많다"면서 "이용객 연령대는 30대 초중반이 대부분이고, 이곳에서 시행착오를 겪다 보니 실제 창업을 했을 때는 실패 확률이 줄어드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위쿡에는 업체들이 특정 구역을 지정해 이용할 수 있는 공유주방 속 개별공간도 존재한다. 커다란 공간을 4개 섹션으로 나눠 각 업체가 해당 공간을 사용한다. 주로 3개월 단위로 계약을 하는데 주방시설은 그대로 유지되고, 들어오는 업체만 바뀐다.

위쿡의 4개 개별 공간 중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듀란트' 베이커리는 제과제빵을 전공한 오유진(34) 씨가 창업한 업체다. 오 씨는 "학교를 졸업하고 매장에서만 일을 하다가 직접 대표가 된 것은 처음"이라면서 "초기 자본이 부족한 상황에서 부담이 큰 임대료와 설비 구매 비용을 줄일 수 있어서 좋았다"라고 덧붙였다.

중소벤처기업부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서울 시내 음식점 평균 창업비용은 9200만 원이다. 반면, 공유주방을 이용할 경우 한 달에 170만 원가량의 임대료만 내면 된다. 설비가 갖춰진 부엌 공간은 물론 전문가의 가이드도 함께 받을 수 있다. 공유주방은 입점 업체들과 개별 이용객들의 주문을 받아 대량으로 발주를 넣기 때문에 재료 단가도 절약할 수 있다.

위쿡에 입점한 '셰프홈' 직원 이규현(32) 씨는 "공유주방은 초기자본이 부족한 청년들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것 같다"면서 "창업에 대한 장벽을 낮춰주는 역할을 하는 셈"이라고 호탕하게 웃었다. 입점 업체 직원들은 같은 푸드메이커들끼리 공유하는 운영 노하우는 공유주방만이 갖고 있는 특징이라고 입을 모았다.

▲‘위쿡’ 안에는 입점 업체들을 위한 촬영용 스튜디오가 있다. 이곳에는 전문적인 푸드스타일리스트가 상주하면서 업체들에게 유용한 팁을 전해준다. (나경연 기자 contest@)
▲‘위쿡’ 안에는 입점 업체들을 위한 촬영용 스튜디오가 있다. 이곳에는 전문적인 푸드스타일리스트가 상주하면서 업체들에게 유용한 팁을 전해준다. (나경연 기자 contest@)

◇증가하는 1인 가구, 외식 대신 배달

위쿡을 비롯해 먼슬리키친, 심플키친, 키친서울 등 현재 약 12개 공유주방 업체가 적극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유주방 인기 요인으로 '1인 가구 증가'를 꼽고 있다. 1인 가구 수가 증가하면서 외식을 하는 인구 비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배달음식을 선호하는 사람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배달음식 시장 규모는 2014년 10조 원에서 2017년 15조 원으로 50% 증가했다. 배달음식 시장 규모가 날로 커지자 업체들은 과감히 홀을 없애고, 배달 서비스에 집중하고 있다. 서빙을 위해 고용했던 종업원의 인건비는 자연스럽게 배달원 인건비로 옮겨 갔다.

간편가정식(HMR) 산업의 빠른 성장도 홀이 사라진 배경이 됐다. 간편가정식 온라인 주문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업체가 많아졌고, 대표적인 곳이 위쿡 입점 업체 '프레시코드'다. 프레시코드는 미리 온라인으로 주문받은 샐러드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로 배달한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4년 기준 5조 원이던 국내 온라인 식품판매 시장 규모는 2017년 18조 원까지 증가했다. 3년 새 4배 가까이 성장한 수치다.

차량 공유업체 우버 창업자이자 공유경제 거물인 트래비스 캘러닉 방한은 공유주방 성장세에 불을 붙였다. 그는 지난해 10월 국내 요식·배달 대행 업계 관계자들을 초청해 공유주방 사업과 한국 진출 방안을 발표했다. 구체적으로는 서울 시내 빌딩 20채를 매입해 빌딩 전체를 공유주방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1호점을 선보인 공유주방 브랜드 '클라우드 키친' 2호점을 올해 안에 한국에 낼 예정이라고 밝히면서, 업체들의 입점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현재 클라우드 키친 2호점에는 유명 맛집 10곳이 입점 계약을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후암주방’은 따뜻한 색의 조명을 사용해 전체적으로 안락한 느낌을 준다. ‘위쿡’처럼 전문적인 조리 기구 대신 가정용 조리 기구가 있었고, 소셜다이닝의 장소에 걸맞게 간편 요리 레시피가 곳곳에 꽂혀 있다. (나경연 기자 contest@)
▲‘후암주방’은 따뜻한 색의 조명을 사용해 전체적으로 안락한 느낌을 준다. ‘위쿡’처럼 전문적인 조리 기구 대신 가정용 조리 기구가 있었고, 소셜다이닝의 장소에 걸맞게 간편 요리 레시피가 곳곳에 꽂혀 있다. (나경연 기자 contest@)

◇'소셜다이닝' 장소로 인기

공유주방이 자영업자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그날 한 끼 특별한 요리를 만들어 맛있게 먹으려는 사람들의 아지트로도 애용된다. 식사하면서 인간관계를 맺는 '소셜다이닝'이 유행을 타면서, 소셜다이닝을 즐기기 위한 장소로 공유주방이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위치한 '후암주방'이다. 후암주방은 도시공감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공유주방으로, 이곳에는 위쿡 같은 전문적인 시설이 아닌 가정용 조리 기구가 마련돼 있다. 따뜻한 조명과 원목 테이블로 안락한 분위기를 조성한 주방으로, 사람들은 예약한 시간 동안 요리를 하고 식사를 즐긴다.

후암주방 외에도 진구네 식탁, 마이키친, 바비키친, 대대식당 등 소셜다이닝을 위한 공유주방이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앞선 이용자는 다음 이용자를 위해 설거지와 청소를 마치고 주방 이용을 종료한다. 뒤에 오는 이용자를 위해 요리 레시피를 메모로 남기거나, 이용 후기를 적어두기도 한다.

후암주방을 운영하는 이준형 도시공감협동조합 건축사무소 대표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영업 날은 모두 예약이 꽉 차고 있다"면서 "공유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이해도가 크게 높아졌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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