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 인상 노선을 수정하면서 완화적인 통화정책이 확산하고 있다. 이에 자금조달 여건이 느슨해지면서 글로벌 자금이 신흥국 국채나 낮은 신용등급의 회사채 등 위험자산으로 다시 몰리고 있다고 20일(현지시간)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전했다.
글로벌 경기둔화 불안에 다시 저금리 환경이 조성되는 가운데 높은 수익률을 원하는 투자자들이 과감하게 위험자산에 베팅하는 것이다. 다만 그만큼 채무불이행(디폴트) 리스크도 고조시켜 경기후퇴기에 시장과 경제 혼란이 더욱 증폭될 우려가 있다.
연준은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당분간 금리 인상을 멈추겠다는 의사를 표명해 글로벌 금융 완화 모드를 가동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FOMC 후 기자회견에서 “중국과 유럽의 경기둔화가 눈에 띈다”고 말했다.
이런 연준의 정책 선회에 신흥국이 재빠르게 반응했다. 신흥국들은 그동안 경제성장 둔화에 대응하고자 공격적인 금융정책을 펼치려 했으나 연준의 금리 인상이 계속되면서 행동에 제한을 받았다. 연준이 금리 인상을 멈추면서 고삐가 풀린 셈이다.
인도중앙은행(RBI)는 지난 7일 시장의 예상을 깨고 1년 반 만에 금리 인하를 단행했으며 14일 이집트도 금리를 낮췄다. 지난해는 약 40개국이 금리를 올렸으나 올해는 치레 등 3개국에 그치고 있다. 반면 금리 인하를 실시한 국가는 이미 8개국에 달했다.
유럽에서도 유럽중앙은행(ECB)이 올해 여름으로 전망했던 금리 인상을 2020년 이후로 연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독일 국채 수익률은 전날 0.1%를 밑돌아 2016년 가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권에 진입하기 일보 직전이다.
그만큼 높은 수익률을 원하는 투자자들이 보다 리스크가 높은 채권으로 향하고 있다. 이를 보여준 것이 최근 그리스 국채 발행이다. 그리스 정부는 유럽연합(EU)의 구제금융 졸업 이후 지난달 말 처음으로 5년물 국채를 연 3.6% 수익률로 발행했다. 발행액의 4배 이상 투자자 수요가 몰렸다. 사우디아라비아도 1월 75억 달러(약 8조4330억 원)의 국채를 성공적으로 발행했다.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신용등급이 ‘BB+’ 이하여서 디폴트 위험이 높은 투기등급 채권인 ‘정크본드’는 미국에서 지난해 12월 전혀 발행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달에는 169억 달러로 4개월 만의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 세계적으로 정크본드 발행은 325억 달러에 달해 전월보다 다섯 배 증가했다.
미즈호종합연구소 집계에 따르면 글로벌 정부와 기업 등에 의한 자본시장에서의 채권 발행액(상환까지 1년 미만 단기채 제외)은 1월에 약 6300억 달러로, 전월 대비 3.3배 급증했다. 1월 기준 증가폭으로는 34년 만의 최고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여전히 실물경제가 약한 상황에서 방만한 자금 흐름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월 글로벌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0.7로, 9개월 연속 하락한 끝에 2년 반 만의 최저치를 찍었다. 경기침체가 뚜렷해지면 저신용 회사채의 디폴트와 신흥국 자금유출 리스크가 다시 커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