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전대 과정을 보면서 여당이 100년 집권을 공공연하게 얘기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어불성설이지만 지금의 제1야당 한국당만 놓고 보면 그리 틀린 얘기도 아니다. 한국당은 현재 집권 가능성이 없다. 집권을 위한 조건을 하나도 갖춘 게 없다. 진정한 보수 가치의 공유는 물론 대안세력으로서의 비전과 합리적 보수와 중도를 담아낼 정체성도 찾아보기 어렵다. 기득권에 매달려 대안 없이 반대만 하는 야당 이미지가 한국당의 현주소다.
무엇보다 합리적 노선 부재는 당 존립 자체를 위협한다. 이미 심판이 끝난 대통령 탄핵과 5·18 등 과거 이슈를 놓고 이전투구를 벌이는 모습에 국민은 좌절했다. 촛불정권의 탄생으로 이어진 ‘박근혜 탄핵’에 대한 정당성 시비는 민심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일부 의원은 5·18을 폄훼하는 시대착오적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지도부는 중심을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다 사태를 키웠다. 전대는 극우 색깔의 ‘태극기부대’에 휘둘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디에도 합리적 목소리는 설 자리가 없었다.
집권할 대안정당으로서의 작은 희망도 보여주지 못했다. ‘다함께 미래로’라는 캐치프레이즈는 헛구호에 불과했다. 미래로 가기 위한 어떤 국가 비전도 찾아볼 수 없다. 당의 비전도 마찬가지다.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한국당은 야당이 된 뒤 줄곧 그랬다. 현 정부의 각종 포퓰리즘 드라이브에 반대 목소리만 높였을 뿐 국민이 공감할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반대를 위한 반대당 이미지가 굳어진 이유다. 그런 구시대 이미지를 만회할 기회가 바로 이번 전대였지만, ‘과거 이전투구’로 날려 버렸다. 비전과 비판적인 대안을 가진 개혁 보수당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다. 민심과 정반대로 가니 지지 기반을 넓힐 수 없다. “한국당에 정권을 맡기면 안 되겠구나”라는 부정적 인식을 다수 국민에게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한국당이 과연 보수당의 가치를 제대로 공유는 하는지 묻고 싶다. 정치 발전 등 합리적 개혁을 거부하며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하는 걸 보수로 착각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보수의 기본 가치는 자유다. 자유시장경제는 자유의 가치를 토대로 한다. 자유 경쟁 원리가 모든 분야에서 작동케 하는 게 보수다. 한국당이 재벌개혁 등 경제민주화와 복지 포퓰리즘을 놓고 진보세력과 경쟁을 벌이는 장면은 보수의 정체성 부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재벌개혁과 복지 포퓰리즘은 평등원리를 앞세운 진보의 정책이다. 보수당의 길이 아닌데도 표 논리로 접근한다. 정체성을 잃은 정치세력은 정당이 아니라 친목 모임이다.
한국당 전대는 합리적 보수와 중도층을 끌어안을 새로운 그릇이 필요하다는 당위성만 확인해 준 자리였다. 여론조사가 이를 보여준다. 최근 한국당 지지율은 그나마 높게 나온 게 20% 후반대다. 지지율이 소폭 상승하자 당에선 “내년 총선은 해볼 만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과연 그럴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자 비율이 45% 정도다. 한때 무너졌던 보수층이 어느 정도 복원됐다는 의미다. 민주당 지지율은 40% 안팎이다. 적어도 유권자 45%에서 60%는 중도를 포함한 비여권이라는 의미다. 통상 보수층이 35~40% 정도라고 한다. 이를 감안하면 최근 한국당 지지율은 중도는커녕 합리적 보수의 지지조차 결집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당의 위기는 진행형이다.
총선은 5% 게임이다. 중도와 합리적 보수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한국당은 내년 총선서 필패다. 1년 전 지방선거의 ‘TK당 악몽’이 재연될 개연성이 다분하다. 이게 현실이다. 2016년 총선 패배 후 곳곳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필자도 ‘TK자민련’을 경고했다. 한국당은 이를 무시한 채 근거 없는 낙관론으로 일관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TK자민련이 현실화했다. 위기를 위기로 느끼지 못하는 게 더 큰 위기다. 지금 한국당이 그렇다. 이대로라면 합리적 보수와 중도는 한국당에 표를 던질 가능성이 희박하다. 선거는 해보나 마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