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도의 세상이야기] 4차 산업혁명과 에너지혁명

입력 2019-03-0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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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객원교수·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1월 하순이면 스위스의 유명한 휴양지인 다보스에서 세계경제포럼이 열린다. 고속도로나 비행기가 닿지 않는 이 외딴 곳에 세계적인 지도자들이 모여 그해 경제 전망과 과제에 대해 논의한다. 우리나라의 재계 지도자들도 참석하여 이들과 정보를 교류하며 종종 대통령이 참석하여 우리 정책을 소개하고 굴지의 기업들을 대상으로 IR활동을 하기도 한다.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하고 SNS가 대세여도 여전히 지도자들은 서로 만남을 통해 미래를 이야기한다.

올해 주제는 2016년에 이어 ‘제4차 산업혁명’이었다. 항상 새로운 화두를 제시하기로 유명한 포럼의 주관자인 쉬밥 회장이 3년 만에 같은 주제를 내놓아서 흥미로웠다. 연속해서 다루면 식상해져 장이 서기 어려울 터인데 말이다. 그럼에도 그가 짧은 시간에 이 주제를 다시 제기한 이유를 내 나름대로 해석해 보았다.

처음 화두를 제기했을 때 4차 산업혁명은 그 정의가 다소 애매했다. 3차 혁명인 정보혁명을 뛰어넘는다는 데 그 연장선상에 있어 보이고, 그 범위도 IT와 빅데이타를 활용한 생산과정의 변화 정도로 과거와 단절의 의미가 확실치 않아 혁신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그가 3년 동안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등 여러 기술의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면서 4차 혁명의 도래에 대한 확신이 섰나 보다. 현재의 첨단기술들이 융합되어 가져올 미래상이 생산현장만이 아닌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 바뀔 정도로 획기적이라 느낀 것이다.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공유경제가 일상화되면서 비즈니스 모델도 새롭게 변해야 하고,특히 사회 전반의 제도도 완전히 바뀌어야 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가 제시한 세상을 변화시킬 10대 기술 중 우리가 몇 년 전부터 주목했던 에너지 저장이 포함된 것이 필자의 관심을 확 끌었다.

2014년 여름 APEC에너지장관회의가 베이징에서 개최되었다. 당시 국제유가가 하락세로 접어들면서 원유를 수입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장관들은 유가가 어느 정도 하락하고, 얼마나 지속될지가 제일 큰 관심이었지만 에너지 효율과 신재생에너지 기술 발달도 단골 메뉴였다. 이때 우리는 에너지저장장치를 비롯한 전지(배터리) 기술의 발달과 미래의 역할을 소개하였다. 우리가 강점을 가진 전지산업의 해외 시장 길을 열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지만 당시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이듬해 미국 주도로 개최되었던 클린에너지장관회의에서도 미래 에너지 수급 구조의 전환을 이끌 핵심 기술로 전지 기술의 발달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IT에 비해 관심은 여전히 저조하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CNN방송에서 특집 기사로 포르투갈 정부가 태양광과 에너지 저장장치를 함께 활용하여 전력 시스템을 청정 에너지원으로 전환하는 사례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우리 기업들이 10년 이상 기술 개발에 매진해온 전지 분야에서 성공의 임계치(critical mass)에 도달할 수 있는 청신호가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지난해 우리나라가 생산해 세계 시장에 수출한 2차전지 판매액이 반도체에 이은 2위 품목이고, 신규 수주 금액도 110조 원에 이르러 미래 산업의 주력으로 발돋움하였다.

금세기 중반경에는 화석연료를 넘어 재생에너지가 보편화된 에너지 전환을 예상한다. 19세기에 석탄을 주로 한 고체 에너지에서 20세기에 석유를 바탕으로 한 액체, 그리고 기체인 가스가 일반화되었다. 그 근저에는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생산,수송 그리고 연소장치 등 사용 기술의 획기적 발달이 있었다.

이제 재생에너지에서 생산된 전기가 보편화된 사회로 전환할 것이라 말한다. 과거 전기는 저장이 경제적으로 어려워 안정적으로 생산이 가능한 연료만 채택되었으며, 수요의 변동성에 대비하여 항상 여유 설비를 가질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태양광이나 풍력은 주종 전기 생산원으로 채택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IT와 배터리 기술을 활용하여 이러한 난관을 해결할 길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대전환이 일어날 기간은 정보혁명에 비해 더딜 수밖에 없다. 사회 전반의 에너지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들어가는 투자가 천문학적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에너지 시스템이 공급의 안정성이란 제약 요인을 극복해야 한다. 에너지 시스템이 실패했을 때 전 사회가 감내해야 할 고통을 생각하면 새로운 기술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몇 해 전 에너지혁명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왔던 토니 세바의 “석기 시대가 끝난 것은 돌이 사라져서가 아니다”라는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즉 새로운 기술이 석기 시대를 끝낸 것처럼 앞으로 에너지 혁명도 기술 발달의 속도와 사회적 수용성에 좌우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화석연료 시대에는 부존 자원도 극히 미약한 후발 주자였다. 그러나 에너지 변화의 시대에 우리가 강점을 가진 IT와 배터리 기술을 활용하여 세계적 에너지 강국으로 발돋움하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 신기술이 수많은 시행착오를 뚫고 성공의 길로 접어들도록 세제, 요금 등 제도 전반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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