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컬리는 지난해 카카오와 인수·합병(M&A) 협상을 진행했지만, 기존 투자자의 반대와 높아진 기업 가치로 인수 협상이 마무리되지 못했다. 이후 각종 매각설에 휘말리던 마켓컬리는 4일 1000억 원 규모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골드만삭스·맥킨지·테마섹 등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며 경력을 쌓은 김슬아(36) 대표가 재무통답게 투자를 이끌어내고, 매각이 아니라 당분간 회사를 키우는 모양새다. 질 좋은 유기농 채소를 찾아 산지를 직접 뛰어다니고 샛별배송 서비스가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택배회사에서 거절당하자 자체 물류 시스템을 갖추는 등 수완을 발휘해온 김 대표의 사업전략이 한몫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투자에 참여한 세콰이어캐피탈차이나의 투자담당 심사역인 티안티안 허는 “김슬아 대표의 비전과 열정, 실행력에 깊은 인상을 받아 투자에 재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설립 후 줄곧 적자를 면치 못한 마켓컬리가 이번 투자 유치에 힘입어 영업이익을 낼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2015년 설립된 마켓컬리는 국내외 벤처캐피털(VC)에서 여러 차례 투자금을 유치했다. 설립 2년 차인 2016년에는 170억 원, 지난해에는 상장 전 지분투자(프리 IPO) 성격으로 670억 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이번 1000억 원 투자 유치는 매각설에 흔들리던 중 성공한 만큼 마켓컬리가 매각이 아닌 직접 운영으로 사업 방향을 전환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마켓컬리는 이번 투자금을 서비스 개선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마켓컬리 측 관계자는 “많은 양의 주문에도 높은 서비스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 물류 시스템 부문에 투자를 확대할 예정”이라며 “구체적으로 물류센터 공간을 확장해 더 많은 주문을 받고, 이를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주문처리 시스템, 배송 경로 최적화 시스템 등 다양한 소프트웨어 기술에 대한 투자도 적극적으로 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마켓컬리는 서울 송파구 장지동에 약 8500평 규모의 물류센터를 운영 중이다. 마켓컬리가 물류센터 공간 확장을 선언하긴 했지만 줄곧 적자에 허덕여온 터에 제2의 물류센터 카드를 쉽게 꺼내들지는 미지수다. 이와 관련해 마켓컬리 측은 “제2의 물류센터를 짓는 방안, 보유 중인 물류센터 내에 새로운 공간을 마련하는 방안 등 여러 가능성을 논의 중”이라며 말을 아꼈다.
아울러 마켓컬리는 이번 투자금을 인력 확충에도 사용할 계획이다. 마켓컬리 측은 “소프트웨어 기술 투자를 위해 AWS 클라우드 네이티브로의 전환, 대용량 데이터 처리 플랫폼 구축 및 다양한 데이터 기반 서비스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이를 위해 개발 전 직군에 대한 채용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마켓컬리는 설립 첫해인 2015년 연매출 29억 원을 기록한 후 2016년 174억 원, 2017년 465억 원에 이어 지난해에는 매출 1800억 원을 넘어서며 급속히 성장했다. 몸집은 지속해서 불리고 있지만, 설립 이래 아직 영업이익은 내지 못했다. 이 같은 마켓컬리의 사업 방향에 대해 업계 일각에서는 적자에 신경 쓰지 않고 외부 투자로 사업 규모를 키우는 데 집중하는 전략이 쿠팡의 행보와 비슷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마켓컬리 측은 “초기 스타트업으로 현재 성장을 위한 투자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적자를 겪고 있지만, 매출 규모 성장에 따라 매출 대비 손실은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며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한 계획보다는 규모의 성장을 도모하고 물류 시스템 고도화, 프로세스 개선 등 서비스 퀄리티를 유지·개선하는 데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