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언제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사회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라는 말을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뜻으로 쓰고 있다. 욕인 듯 아닌 듯, 핀잔을 주는 말인 듯 아닌 듯이 사용하면서 적잖은 애교도 띠었던 말이었는데 근래에 이 말과 비슷한 변종 속어들이 나오면서 불쾌한 욕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가 도대체 어떤 소리이기에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을까?
‘씻나락’은 ‘씨+사이시옷(ㅅ)+나락’ 구조로 이루어진 단어인데 ‘나락’은 ‘볍씨’와 같은 말이다. 그러므로 씻나락은 장차 싹을 틔워 ‘모종 벼’로 사용하기 위해 보관하고 있는 볍씨를 이르는 말이다. 다음 해 농사를 위해서는 씻나락을 잘 보관해야 함은 물론이다. 굶주림에 시달리다 못해 씻나락까지 먹어버린다면 이는 사실상 삶을 포기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소중한 볍씨를 사람이 아닌 귀신이 까먹고 있다니 도대체 무슨 상황일까?
후손들이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제사상을 차렸는데 조상귀신이 내려와 보니 제사상이 허술하여 먹을 게 없으면 고픈 배를 움켜쥐고 광에 가서 씻나락을 까먹는다고 한다. 후손은 차마 씻나락마저 먹어버릴 수는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제사상을 허술하게 차렸는데 조상귀신은 그 속내도 모르고 광에 가서 자손이 깊이 감춰둔 씻나락을 까먹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귀신의 마음인들 편할까?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했을 것이다. 귀신의 이와 같은 중얼거림을 일러 “씻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했다고 한다. 자손을 사랑하는 조상귀신이라면 설령 자신이 굶는 한이 있더라도 자손이 소중히 보관하고 있는 씻나락을 까먹어서는 안 될 것이다. 떳떳하지 못하게 구석에 숨어 씻나락을 까먹으면서 구시렁대는 말이 결코 이치에 합당할 리 없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표현하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