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재계를 짊어지고 나갈 젊은 오너 3·4세들의 공통된 경영철학이다.
이들은 선대 총수들보다 과감한 투자를 진행함은 물론, 만년 경쟁자였던 다른 기업들과의 협업도 서슴지 않고 밀어붙인다.
맨땅에서 기업을 일군 창업주와 2세들에 비해 3·4세들은 비교적 안정적인 환경에서 성장했다.
선대와 가장 큰 차이점은 이들 대부분이 외국에서 공부하며 해외 선진사례를 보다 많이 접하는 등 글로벌 감각을 키운 해외파라는 점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게이오기주쿠대학교(석사)와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박사과정 수료)에서 수학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은 샌프란시스코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로체스터공과대학을 졸업했다.
또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았고 허세홍 GS칼텍스 사장도 스탠퍼드대학교(석사)를 다니는 등 3~4세 재계 총수 및 후계자들은 대부분 다년간 유학경험을 통해 온 몸 가득히 자유로움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감을 갖췄다.
◇통 큰 결단과 발 빠른 대응=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는 업황이 좋지 않음에도 대규모 투자를 진행할 수 있는 자신감과 결단력이 있다.
조부 고(故) 이병철 회장의 “써야 할 곳과 안 써도 좋을 곳을 분간하라. 판단이 흐리면 낭패가 따른다”는 조언이 그에게 영향을 미친 것일까.
최근 반도체 초호황 국면이 꺾인 상황에서도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분야 연구개발 및 생산시설 확충에 133조 원을 투자키로 결단을 내렸다.
지난해 8월 경제 활성화와 신 산업 육성을 위해 향후 3년간 180조 원(국내 130조 원)을 신규 투자한다고 발표한지 1년도 채 안됐다.
당시 이 부회장은 인공지능(AI)·5세대 이동통신·바이오·전장부품 등 4대 미래 성장사업에 약 25조 원 투자를 결정하며 ‘초격차’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새내기 총수인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신기술 확보에 애착을 드러내며 과감한 투자도 망설이지 않는다.
LG화학 투자가 대표적 사례다. 올 초 중국 배터리 공장에 1조2000억 원의 증설 투자를 결정했으며 미국 듀폰으로부터 솔루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재료기술을 인수하는 등 과감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 기초소재부문 고부가 사업, 전지 부문의 수요 대응을 위해 올해 6조2000억 원의 시설 투자를 단행할 예정이다. 이는 지난해 시설 투자금 대비 34.8% 급증한 수치다.
현대자동차그룹 역시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의 시대가 도래하며 기존에는 조심스러웠던 투자가 ‘통 큰 미래 투자’로 변했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향후 5년간 현대차의 연구·개발(R&D)과 미래 기술 분야에 총 45조3000억 원을 투자키로 했다. 미래차 관련 핵심기술을 강화해 4차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게임 체인저’로 도약하기 위해서다.
이는 연 평균 9조 원에 달하는 규모로, 과거 5년 연평균 투자금(5조7000억 원) 대비 58% 이상 늘어난 수치다. 현대차가 구체적인 수익성 목표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원태 회장이 취임후 내린 사실상 첫 경영조치는 1등석(퍼스트클래스)의 과감한 축소였다. 대한항공은 6월부터 국제선 27개 노선에서 추가로 1등석(퍼스트클래스)을 없애기로 했다.
국제선 111개 구간 중 약 31%인 35개 구간에서만 1등석이 유지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1등석은 항공사의 상징적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경영효율화를 위해 이를 과감히 없애는 것은 명분보다 실리를 택한 3세 경영인의 판단에 따른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 만년 경쟁자가 미래 동반자로= 젊은 총수들은 경쟁사 간 동맹에도 적극적이다. 특히 삼성과 현대차의 경우, 이재용·정의선 시대가 도래하면서 과거에 보기 힘들었던 협업 움직임이 보인다.
최근에는 자동차 시장에서 과거 앙금이 있던 현대차와 삼성 간 전기차용 배터리 등 협업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해에는 삼성전자와 기아차가 자율주행차 기술 제휴 마케팅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올 초 스마트폰 시장에서 최대 라이벌인 애플과도 전략적 제휴 결정해 전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수년 간에 걸친 ‘스마트폰 특허 전쟁’으로 두 회사의 관계는 오랜기간 냉랭했다.
올해부터 GS칼텍스를 이끌게 된 GS그룹 오너 4세 허세홍 사장은 취임 이후 기존 사업을 강화하면서도 4차 산업 혁명에 대응하기 위해 활발한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1월 LG전자와 손잡고 전기차 시대를 대비한 ‘미래형 주유소’를 만들기로 했다. 또 롯데렌탈의 자회사인 카셰어링 그린카에 총 350억 원의 투자를 진행하며 새로운 시장에도 진입했다.
재계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며 기존 패러다임이 뒤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젊은 총수들은 기업을 책임지고 이끌어가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면서 “정확하면서도 시의 적절한 판단력과 함께 때로는 경쟁자도 보듬으며 함께 갈 수 있는 포용력도 갖춰야 하는 등 팔방미인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