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식의 시사 인문학] 잘못을 고치는 용기

입력 2019-05-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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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칼럼니스트

사람은 여러모로 불완전한 존재다.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라도 아무런 오류나 잘못, 실수나 실패를 전혀 범하지 않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오류, 잘못, 실수, 실패, 이런 것이 반가울 수는 없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하는 것들이다.

불가피한 잘못, 쓸모도 있다

물론 이런 ‘잘못’에 긍정적 측면이 없는 건 아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격언도 있지 않은가. 그뿐이 아니다. 인간의 모든 학습은 다양한 시도와 그릇된 판단, 즉 시행착오(試行錯誤, trial and error)를 반복하면서 이루는 길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거의 일치된 견해다. 인간은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고 철이 든다. 어떤 문제나 사태에 직면하거나 무슨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모르면 자연히 이런저런 시도를 하게 된다. 그리고 여러 시행착오의 결과로 우연히 성과를 거둔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면서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철학자 칼 포퍼는 인간의 가장 자랑스러운 성취물인 과학 역시 바로 이런 시행착오의 산물과 다름없다고 정색을 하고 주장했다. 과학 이론의 발견이나 과학의 발전은 그의 표현을 빌리면 ‘억측과 반박’을 통해 이루어진다. 추측에 불과한 이런저런 가설을 우선 세운 다음에 규명하고자 하는 대상의 성질과 작용을 얼마나 잘 설명해주는지 시험하고 반박하는 과정에서 과학 이론이 탄생하고 성장한다는 말이다.

공자 역시 ‘잘못’이 갖는 의미에 대해 말했다. 그가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려하지 말라[過則勿憚改]”고 말했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큰 잘못[過而不改是謂過矣]”이라고도 했다. 사람인 이상 잘못을 범하지 않을 도리가 없지만, 더 큰 잘못은 이미 범한 잘못을 고치려고 하지 않는 데 있다고 봤다. 잘못을 고치는 데 주저하면 같은 잘못을 다시 범할 위험이 있을뿐더러 또 다른 잘못을 저지를 수 있으므로 고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공자의 이런 주장은 개인의 행동지침이지 집단이나 조직의 대응방안은 아니다. 잘못을 고치는 것이 ‘군자의 바람직한 태도’라고 한정하는 데서도 이 점은 분명해진다. 그러나 그의 주문은 어떠한 집단의 지도자가 마땅히 지녀야 할 자세로 간주해도 무방해 보인다. 심지어 국가 통치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으로 봐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듯하다. 공자의 표현을 흉내 낸다면, “(훌륭한) 리더십이란 (정책 추진이나 의사결정에서) 오류나 실패를 저지르면 바로잡는 데 게으르지 않는 것이다”라고 할 수 있겠다.

공자가 말한 ‘잘못’ 역시 도덕적 판단 대상이 되는 잘못이나 실수뿐만 아니라, 사실 인식이나 논리 전개 과정에서 생기는 오류와, 일의 진행과정에서 발생하는 실패에 두루 적용할 수 있겠다. 즉, 옳지 않은 행동, 잘못된 판단, 불합리한 의사결정, 엉터리 추론 등이 다 포함된다.

문 대통령의 현실인식: ‘별 문제없다’

최근 몇 차례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 원로들과 대화를 나눴고, 이 자리에서 국정 방향에 대한 원로들의 보다 구체적인 건의도 있었음이 보도됐다. 9일에는 취임 2주년을 맞는 방송 대담도 가졌다. 취임 이후 2년간의 국정 전반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과 자평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대통령은 여러 질문과 제안에 대하여 솔직하게 답변했다.

우선, 대통령은 “거시적으로 볼 때 한국 경제가 크게 성공한 것은 인정해야 한다. 이 부분에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소득주도 성장론에 바탕을 둔 경제정책은 부작용이 다소 있지만 여러모로 긍정적으로 기여했으므로 그 기조를 바꿀 필요가 없다고 했다.

적폐청산에 관해서는 “적폐 수사나 재판은 우리 정부가 시작한 게 아니라 앞 정부에서 이미 시작했던 일”이고 현 정부가 “기획하거나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하면서 “살아 움직이는 수사를 통제할 수도 없고 통제해서도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또한, 대통령의 고위직 인사권 행사 역시 별 문제가 없으며 일부에서 꼬집듯이 편협하거나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대통령의 이런 현실인식은 상당히 의아하게 느껴졌다. 경제정책으로 말하면, 경제학자들을 비롯한 대다수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지금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기조를 바꿔야 한다고 계속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많은 언론은 거의 매일 현 경제정책의 부작용과 문제점을 열거, 분석하고 대안과 개선 방향을 제시하는 기사로 채워지고 있는 게 엄연한 사실이다.

적폐청산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 역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적폐청산에 대해, 그 당위성에 공감하면서 지속적으로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부정적 측면이 작지 않으므로 보다 조심스럽게 이뤄졌어야 하고 이젠 끝내야 한다는 견해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건 국민 대다수에겐 적폐청산이 문 대통령이 취임하여 주도적으로 강하게 추진해온 과제로 보이는데, 대통령은 시쳇말로 ‘유체이탈화법’으로, 마치 다른 나라 일처럼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 고위직의 인사 문제도 한번 들여다보자. 굳이 무슨 까다로운 도덕성 기준이나 대통령 선거 당시 제시했던 인사 원칙이나 인사 청문회 보고서 채택 여부 등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취임 이래의 인사가 잘됐다, 그만하면 성공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잘못을 저질렀음을 우선 깨달아야

대통령의 국가 원로들과의 대화와 방송 대담을 통해 한 가지는 알게 됐다. 대통령의 판단에 따르면, 지금의 국정 운영 방식이나 국가정책 그 자체에는 별 문제가 없다는 점이다. 정책 추진이나 의사결정에서 시급한 개선이나 방향 조정이 필요한 오류나 잘못이 없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실패를 비판함은 결국 대통령을 향해 별다른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고쳐야 한다고 막무가내로, 즉 공격을 위한 공격과 마찬가지라고 보일 것이다.

잘못이나 오류, 실수나 실패의 가치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잘못을 선뜻 고침은 진정한 용기이다. 잘못을 방치하거나 되풀이함은 비겁이 아니면 안이함이다. 저질렀을 경우에 선뜻 인정하고 서둘러 바로잡으려고 노력할 때 개선과 발전, 심지어 비약의 길로 들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일상적 행동에서나 집단의 지도자로서 중대한 정책수립과 의사결정에서나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런 오류나 실패를 고치는 용기를 제때에 발휘하려면, 이에 앞서 잘못을 잘못이라고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잘못을 성찰할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흔한 표현으로 지혜라고 해도 될 것이다. 잘못이나 오류, 실패 등을 고치거나 만회하려면 이미 행한 일이나 가고 있는 방향이 그릇된 것임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잘못이 잘못임을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잘못을 고치라는 것은 그 자체로 성립할 수 없는 요구다. 달리 말하면, 문제점의 수정이나 추진방향의 전환에는 오류나 실패라는 사실인식이 선행돼야 한다. 결국, 잘못을 고치는 용기라는 덕목에는 잘못을 성찰, 인식하는 능력이 당연히 포함됨이 분명해진다.

대체로 용기는 지혜보다 수준이 다소 떨어지는 덕성으로 여긴다. 철학자 플라톤도, 용기는 국가 수호자(전사)에게 요구되는 덕성으로서 국가 통치자에게 요구되는 덕성인 지혜보다 격이 낮다고 봤다. 그런데, 잘못을 고치는 용기는 잘못을 인식하는 지혜라는 덕성이 선행되지 않으면 아예 발휘될 수 없다는 점에서 지혜를 포함한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다. 이런 용기를 온전히 갖추기가 쉽지 않음은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훌륭한 인격자(군자)나 탁월한 리더십이 실제로는 희귀할 수밖에 없는 까닭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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