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장기전에 대비해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각자 상대를 견제하면서 내부 결속을 다지거나 구체적 대비책을 마련하며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는 모양새다. 내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별도로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양국 정상회담이 ‘종전’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22일(현지시간) CNBC방송에 따르면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이날 “중국과의 무역회담 일정이 당분간 잡혀 있지 않다”며 “무역 전쟁 장기화에 대비해 비상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기업들에 주문했다.
므누신 장관은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청문회 출석에 앞서 기자들에게 “중국 측이 지난 9~10일 워싱턴 고위급 무역회담이 끝나고 나서 이달 베이징 방문을 요청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달 초 회담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화웨이테크놀로지 등 중국 통신장비업체를 겨냥한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중국 쪽의 회담 의욕이 싹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므누신 장관은 청문회에서는 “미국이 약 3000억 달러(약 357조 원) 규모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기까지 최소 한 달의 시간이 남아있다”며 “앞으로 30일에서 45일 동안 다른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다음 달 28~29일 사이에 열릴 미중 정상회담에서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바로 대중 추가 관세를 발동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면서 므누신 장관은 미국 기업들에 장기전에 따른 대비책을 주문했다. 그는 공급망을 재구성해 무역 전쟁으로 인한 제품 가격 인상을 억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 쪽 분위기는 더 비장하다. 시 주석이 새로운 대장정이 시작됐다고 자국민들에게 정신 무장을 촉구하는가 하면 전가의 보도가 된 ‘희토류’ 수출 제한 카드를 슬쩍 꺼내들고, 자국 IT 산업에 대한 새로운 지원책을 발표하는 등 응전 대비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장관)은 22일 “미국이 평등한 협상을 원한다면 중국의 대문은 열려 있지만, 극한의 압박 조치를 선택한다면 중국은 끝까지 단호하게 싸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날 중국 재정부는 미국과의 무역 전쟁에서 아킬레스건이 될 소프트웨어와 집적회로(IC) 설계 관련 기업들의 발전을 지원하고자 이날 새로운 감세 정책을 발표했다. 재정부 성명에 따르면 해당 기업들은 지난해 말까지 이익을 냈다면 2년간 기업소득세(법인세)가 면제되고, 3~5년째는 세율이 현행 25%에서 12.5%로 절반으로 낮아진다.
앞서 시 주석은 20일 1934년 10월 중국 공산당이 2년 간의 대장정을 시작한 장시성을 찾아 “우리는 지금 새로운 대장정을 시작한다”고 강조하면서 미국과의 무역 전쟁이 장기화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같은 날 오전에는 미·중 무역협상 담당자인 류허 부총리와 함께 장시성의 한 희토류 업체를 방문해 “희토류는 중요한 전략적 자원이자 재생 불가능한 자원”이라고 상기시켰다. 전날에는 장시성 육군보병학원도 방문해 간부들에게 “강한 군대를 위해 힘 있는 인재를 육성하라”고 독려했다.
중국은 오는 6월 4일 톈안먼 사태 30주기를 앞두고 홍콩과 대만에서 집회와 관련 행사가 예정되는 등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민감한 시기인 만큼 시 주석은 자국 내 관심을 반미(反美)로 돌려 자신에 대한 반발과 비판을 피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