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조차도 일찍이 이놈을 놓고 “술 취한 사람 옆에 있는 가로등과 같다.
빛을 비추기보다 기대는 용도로 쓰인다”라고 일갈했다. 그래도 이번 정권에서만큼 주목받고 욕먹고 논란이 된 적은 드물었던 것 같다.
문제의 장본인은 바로 ‘통계’다. 최근 정태호 대통령일자리수석비서관이 뜬금없는 고용상황 개선 주장을 했다. 그것도 기자간담회를 자청해서.
그는 “올해 들어와서는 취업자 증가 수가 2월 26만여 명, 3월 25만여 명, 4월 17만여 명을 나타내고 있다”라며 “2018년과 비교해 봤을 때는 획기적 변화”라고 말했다.
거짓말인가? 아니다. 반박 불가 팩트(fact)다.
정 수석은 또 “상용직 증가 수가 평균 30만~40만 명 정도로 지속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고용의 질적 측면도 좋아지고 있다며 통계적 증거를 내민 거다.
청와대 다른 관계자도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인구 5000만 명 이상)에 7번째로 들어갔다”며 경제 근간이 튼튼함을 과시했다.
인용 통계만 놓고 보자. 뻥튀기인가?
아니다. 이 또한 불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런 주장의 진위는 어떤가.
지금은 고용의 위기이자 경제난국의 초입에 들어서 있다. 근거는 차고 넘친다.
지난해 취업자 수 증가 폭이 당초 정부 예상치인 30만 명의 3분의 1에 불과한 9만7000명이었다. 올해 취업자 증가폭을 기저효과에 따른 착시효과로 봐야 한다.
상용직 취업자 수 증가 폭은 2012~2016년에 연평균 45만5000명씩 늘었다.
30만 명 정도로 자랑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4월 실업률은 19년 만의 최고인 4.4%까지 치솟았다.
실업자 수(124만 명) 역시 2000년 이후 최고치다. 청년층 체감 실업률(25.2%)은 통계 작성 후 최악이다.
통계자료를 놓고 양극단을 달리는 이런 주장에 국민은 피곤할 수밖에 없다.
통계가 중요한 이유는 경제 주체들에게 그나마 객관적 현실을 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주변의 일부 기업, 경영자, 근로자, 소비 상황만 놓고 경기판단을 잘못하는 오류를 최소화하자는 취지다.
특히 정부가 자칫 ‘긍정 오류(false positive)’에 빠지게 되면 엉뚱한 대책이 나오게 되고 경제 기둥은 무너지게 된다.
긍정 오류는 참이라고 판단했는데 실제로는 거짓인 판단 오류를 일컫는다. 이를 방지하자고 거액을 들여 조사하고 통계를 내는 것이다.
물론, 통계에도 선천적인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1987년 어느 날 이탈리아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하룻밤 새 갑자기 20% 증가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탈리아 통계청이 그날부터 지하경제나 그림자경제와 같은 비공식경제를 공식 GDP에 포함한 영향이다.
이탈리아가 단숨에 영국을 제치고 세계 경제 5위 대국으로 올라서는 기이한 상황이 연출됐다. 두 나라 경제 상황에서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데도 말이다.
최근 우리나라 통계 논란을 보면 그리스 경제학자 안드레아스 게오르기우도 떠오른다.
2008년 그리스가 재정위기를 겪자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은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 조건을 달았다.
통계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새 통계청장으로 IMF에서 20년간 일한 경제학자 게오르기우를 임명하라는 것이었다. 그가 취임 후 그리스의 재정적자비율을 계산해보니 종전보다 높아졌다.
이것이 허리띠 졸라매는 긴축재정의 근거가 됐다. 그러자 반(反)긴축파는 그가 숫자를 과장해 국익을 해쳤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게오르기우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통계조작이 없었다며 “그리스에서 통계는 격투기”라고 한숨지었다.
미국 통계학자 캐럴 라이트는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거짓말쟁이들은 숫자를 어떻게 이용할까 궁리한다”라고 했다.
한겨울에 비닐하우스를 지어놓고 난방으로 피운 꽃을 보며 봄이 왔다고 외치는 이는 바보이거나 사기꾼이다.
경제통계를 편의적으로 이용해 거짓말 아닌 거짓말로 면피와 생색을 내려는 세력은 자칫 역사의 죄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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