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탐방이 허용되자마자 다녀왔다는 지인은 첩첩산중에 숨겨진 자연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었다고 했다. 헉헉거리며 험준한 바위와 수풀을 헤치고 올라 눈앞에 펼쳐진 옥빛 폭포수를 보는데, 너무나도 신비로워 숨이 멎는 듯했단다. 계단 모양의 암반을 따라 굽이굽이 흐르는 삼층 폭포의 모습엔 온 마음을 빼앗겼다고 했다. 그가 찍은 사진을 보는데, 폭포뿐만 아니라 그 주변 고목들에 내려앉은 짙푸른 이끼에서 태고의 신비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이달에도 개방한다니 만사 제쳐두고 달려가서 아름다운 모습을 두 눈에 담아 오리라.
지리산에 칠선계곡이 있다면 소백산엔 거칠지만 너그럽게 품을 내어 주는 죽령 옛길이 있다. ‘아흔아홉 굽이 내리막 30리, 오르막 30리’라고 표현할 정도로 험한 길이다. 그래도 그 옛날 한양과 경상도를 잇는 가장 빠른 길이었으니 수많은 길손들이 이 고개를 넘었을 터다. 그래서일까, 이 길을 걷다 보면 길손들의 한숨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때론 바지게꾼의 노랫소리가 솔향을 타고 들려와 절로 흥얼거리게 된다.
“한양 가는 선비들도/ 이 고개를 쉬어 넘고/ 오고 가는 원님들도/ 이 고개를 자고 넘네/ 꼬불꼬불 열두 고개/ 조물주도 야속하다/ 가노 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시그라기 우는 고개/ 내 고개를 언제 가노”(‘바지게꾼의 노래’)
이 노래는 사오 년 전 경북 울진의 ‘십이령 바지게길’을 걸을 때 그곳 주민들에게 배웠다. ‘바지게꾼’은 좁은 산길도 빠르게 다닐 수 있도록 다리를 자른 지게인 ‘바지게’를 메고 다니던 장돌뱅이를 일컫는다. 이들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쉴 때도 서서 쉬었다 하여 ‘선질꾼’으로도 불렸다.
아흔아홉 굽이는 몇 킬로미터쯤 될까? 굽이는 ‘휘어서 구부러진 곳’이나 ‘휘어서 구부러진 곳을 세는 단위’를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굽이’를 발음 나는 대로 ‘구비’라고 적는 이들이 많다. 굽이굽이, 굽이돌다, 굽이지다, 굽이치다, 굽이감다 역시 ‘구비구비’, ‘구비돌다’, ‘구비지다’, ‘구비치다’, ‘구비감다’로 쓰는데, 모두 잘못이다. ‘구비’라는 우리말은 없기 때문이다.
굽이는 동사 ‘굽다’에 접미사 ‘-이’가 붙어서 만들어진 명사이다. 이처럼 동사나 형용사 뒤에 붙어 명사로 만들어주는 ‘-이’, ‘-음/-ㅁ’을 명사화 접미사라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말들은 어간의 원형을 밝혀 써야 한다. 소리 나는 대로 쓸 수 없다는 뜻이다. 이런 이유로 ‘굽이’는 굽이굽이를 비롯해 굽이감다, 굽이돌다, 굽이지다, 굽이치다 등 다양한 합성어 혹은 파생어를 낳는다.
굽이굽이와 비슷한 말로 ‘곱이곱이’가 있다. ‘한쪽으로 약간 급하게 휘다’라는 뜻의 동사 ‘곱다’의 어간 ‘곱’에 ‘-이’가 붙어서 생긴 말의 반복 표현이다. 따라서 이 말 역시 ‘고비고비’라고 쓰면 안 된다.
산하가 초록으로 물드는 계절, 자연이 숨 쉬는 길을 걷고 싶다면 천년 세월을 품고 있는 옛길로 떠나시라. 꼬불꼬불 굽이굽이 할머니 품 같은 길을 걷다 보면 세상 시름도 아픔도 욕심도 다 덮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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