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산업계가 미·중 무역전쟁 여파를 고스란히 떠안으면서 2분기 실적 악화 우려에 직면했다.
미국의 중국 제재가 국내 기업에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예상대로 당장의 반사이익은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 증대, 전방 수요 침체로 수출 중심의 국내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은 것으로 보인다.
9일 산업계 및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 등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투 톱 회사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올 2분기 각각 6조363억 원, 8289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59.4%, 85.1% 감소한 규모다. 반도체 가격 하락이 계속 이어지면서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5월 이후 뚜렷해진 달러 강세는 반도체 부문 실적 악화의 완충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지만, 하반기 전망은 더 어둡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디램익스체인지는 당초 10%로 예상했던 3분기 D램 가격 하락 폭을 10~15%로 조정했다.
업계 관계자는 “D램(RAM)도 낸드(NAND)도 가격 하락세가 예상보다 가파른 상황이다. 특히, 서버용 D램 재고가 예상만큼 줄어들지 않고 있는 가운데, 하반기 기대했던 데이터센터 수요 회복도 다시 안개 속에 빠져들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와 더불어 전자부품 업계도 동반 실적 하락이 예상된다. 삼성전기와 삼성SDI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8%, 3.7%씩 소폭 감소한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됐다. LG디스플레이와 LG이노텍은 영업손실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전자업종 중에는 가전사업 정도만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LG전자는 2분기 영업이익 7752억 원을 달성, 전년 동기 대비 0.5% 증가한 실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건조기, 청소기, 의류관리기, 공기청정기 등 신제품 비중이 증가하면서 외형 성장 및 수익성 개선 효과가 기대된다.
삼성전자의 가전사업도 미국 시장 인프라 효율화 관련 투자가 마무리되면서 영업이익률이 한 자릿수 중반으로 정상화될 전망이다.
화학·정유업계의 성적표는 더 암울하다.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케미칼 등의 2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3.4% 47.5%, 42.8%씩 급감할 것으로 우려된다.
연초 중국의 경기 부양 정책 기대감으로 화학제품 수요가 다소 회복됐으나, 실제 중국 수요가 크게 회복되지 않으면서 화학제품 가격은 5월부터 약세를 지속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과 S-Oil 등 정유업종 상황도 심각하다. 양사는 각각 전년 동기 대비 35.4%, 34.4%씩 줄어든 영업이익을 기록할 전망이다. 정제마진 둔화가 다시 발목을 잡고 있다. 여기에 신흥 국가 환율 상승, 기대보다 약한 수요 등도 부담이었다..
지난해부터 회복세를 보이던 조선업계에도 다시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의 2분기 영업손실 규모는 각각 189억 원, 200억 원에 이를 전망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전년 동기 대비 59.1% 감소한 영업이익 939억 원으로 추정된다.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선박 발주가 줄어드는 가운데 올해 들어 중국에 선박 수주 1위 자리를 내주는 등 수주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철강업계도 포스코, 현대제철이 10.2%, 27.6%씩 감소한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철강업계는 자동차 강판과 후판 가격 협상에서 원가 인상분을 반영하지 못하며 실적 기대감이 낮아진 상황이다.
항공업계는 실적이 개선된 대한항공을 제외한 아시아나항공과 제주항공이 각각 57.6%, 19.8% 감소한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 업계는 신차 효과로 전년 대비 상승한 실적을 거둘 전망이다. 다만, 지난해 실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기저효과로 상대적으로 나아 보이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팰리세이드 등 신차효과로 현대차의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9.9% 증가한 1조454억 원으로 전망된다. 기아차의 2분기 영업이익은 4334억 원으로 전년 대비 22.8% 급증했다. 신형 텔루라이드와 쏘울의 출시로 북미 시장에서 양호한 성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최근 미국의 잇따른 대중국 관세부과로 한국 수출은 총 0.14%(연간 8억7000만 달러) 이상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직접적으로는 중국의 중간재 수요가 줄어들고, 간접적으로는 중국 성장 둔화에 따라 한국의 수출 감소가 우려된다. 기업의 투자지연, 금융시장 불안, 유가하락 등 미중 무역분쟁이 시장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까지 감안하면 수출 감소분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