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이웅열 코오롱 전 회장의 네번째 자식’이란 영광의 수식어들이 결국 물거품처럼 흩어졌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인보사’의 품목허가 취소라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결론을 뒤집지 못했다. 이제 회사는 수천 명의 환자 안전관리와 각종 소송, 검찰 수사 등 산적한 과제를 떠안은 채 법정 다툼으로 구사일생의 기회를 모색해야 할 처지가 됐다.
3일 식약처의 인보사 허가 취소 처분을 받아든 코오롱생명과학은 예상대로 허가 취소 행정처분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과 행정소송 등 법적 절차를 밟을 계획이다.
식약처는 코오롱생명과학이 문제가 된 인보사 2액의 성분을 사실과 다르게 기재했다고 판단하고, 이에 따라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허가 취소를 결정했다. 허가 취소 처분이 확정되면서 코오롱생명과학은 앞으로 1년간 인보사와 같은 성분으로 품목허가를 신청할 수 없다.
그러나 회사는 성분 변동의 과정에서 고의성을 부인하고, 개발에서 시판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식약처 기준에 맞춰 안전성과 유효성을 증명한 만큼 취소 처분이 부당하다고 맞서고 있다. 코오롱생명과학 측은 “고의적인 조작이나 은폐는 결코 없었다”면서 “행정소송을 통해 인보사를 환자들에게 다시 제공할 수 있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코오롱생명과학은 법적 절차를 통해 식약처의 처분에 브레이크를 걸면서 미국 식품의약국(FDA)가 인보사의 임상 3상을 재개할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있다. FDA는 인보사 주성분의 세포 변경 가능성을 확인하면서 지난 5월 임상 3상을 중지할 것을 인보사의 개발사인 코오롱티슈진에 통보했다.
FDA는 임상 재개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임상시험용 의약품 구성성분 특성 분석과 향후 조치 사항 등에 대한 소명자료를 요구했다. 이 자료의 제출은 8월께 가능할 전망으로, FDA의 검토 기간 등을 고려하면 결과는 9월 이후에야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업계는 식약처가 이미 품목허가 취소를 발표한 만큼 미국 임상 3상 재개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자국에서도 취소 처분을 받은 의약품에 대해 FDA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행정소송 진행 외에도 코오롱의 앞날은 첩첩산중이다. 당장 10일로 예정된 코오롱티슈진의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해당 대상 결정은 인보사 사태의 또 다른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코오롱티슈진은 애초에 인보사를 위해 설립된 회사로, 상장 절차에 대한 문제뿐만 아니라 인보사의 허가 취소 처분으로 인한 ‘주된 영업이 정지된 경우’ 사유에도 해당한다.
거래소는 애초 지난달 19일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여부를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인보사의 최종 행정처분을 참고하기 위해 시한을 한 차례 미뤘다. 결국 식약처가 인보사의 퇴출을 결정한 만큼 시장에서는 코오롱티슈진도 바람 앞의 등불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다만, 5만9000여 명에 달하는 소액주주가 얽혀 있어 거래소가 사태의 파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인보사 사태로 코오롱티슈진 주주들은 이미 회사는 물론 상장 주관사인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에도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코오롱에 날아온 소장은 이뿐만이 아니다. 인보사 투여 환자 244명이 일찌감치 집단 소송을 진행 중이며, 투여 환자 수가 3700여 명에 이르는 점을 고려하면 규모는 더욱 불어날 수 있다. 삼성화재보험과 KB손해보험 등 10개 손해보험회사는 보험금으로 부당지급된 인보사 판매대금을 돌려받기 위한 민·형사 소송을 냈다. 해당 금액은 300억 원대에 이른다. 만일 코오롱티슈진이 상폐 절차에 들어가면 코오롱은 추가로 수천억 원대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
코오롱생명과학이 약속한 장기추적조사 비용도 만만치 않다. 15년에 걸친 조사를 위해서는 800억 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가운데 검찰은 코오롱을 향한 본격적인 수사를 가속하고 있다. 지난달 초 코오롱생명과학 본사와 코오롱티슈진 한국 지점을 압수수색했으며, 2일에는 코오롱티슈진 임원들을 불러 조사했다. 출국금지 조치된 이웅열 코오롱 전 회장에 대한 소환조사도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관건은 이 전 회장과 코오롱이 인보사의 성분이 바뀐 것을 알면서도 시판을 위한 허가 절차와 코오롱티슈진 상장을 밀어붙였는지의 진위 여부다. 만일 고의성이 확인되면 허가받지 않은 성분이 포함된 의약품을 판매한 혐의(약사법 위반) 외에도 허위 정보를 이용해 회사를 상장해 차익을 챙긴 혐의(자본시장법 위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가 적용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