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장마가 끝나려나? 지난주에는 폭우가 내려 피해를 입은 곳이 있다. 습기가 많고 눅눅한 날씨가 계속되니 짜증이 날 때도 있다. 잠깐 태양이 나오는 틈을 타서 빨래도 말리고 축축한 물건도 밖에 내놓아 바람을 좀 쐬려 하면 불과 한두 시간도 안 지나서 먹구름이 다시 밀려와 또 비가 내리려 한다. 이럴 때면 서둘러 널었던 빨래도 걷고 밖에 내어놓았던 물건들도 다 거두어들여야 한다. 이처럼 “비가 오려고 할 때 비에 맞지 않도록 물건을 치우거나 덮어서 단속하는 일”을 ‘비설거지’라고 한다.
비설거지는 ‘비’와 ‘설거지’의 합성어이다. 설거지는 ‘먹고 난 뒤에 그릇을 씻어 정리하는 일’을 말하는데 국어사전은 순우리말로 분류해 놓았다. 그런데 필자는 설거지 또한 ‘설’과 ‘걷이’의 합성어라고 생각한다. ‘걷이’는 ‘거두다’가 어간인 말로서 ‘거두어들이기’의 줄임말이다. 가을에 농작물을 거두어들이는 것을 ‘가을걷이’라 하고, 여기저기서 받을 돈이나 물건을 거두어들이는 것은 ‘받걷이’라고 하는데 이때의 ‘걷이’는 다 ‘거두어들이기’의 줄임말이다. 그러므로 ‘설걷이’는 ‘설(設)’을 거두어들인다는 뜻이다. ‘設’은 흔히 ‘베풀 설’이라고 훈독하는데 학교나 회사, 법인 등을 세운다는 의미의 ‘설립(設立)’이 ‘設’이 사용되는 대표적 용례이다. 그런데 이 ‘設’은 잔치를 베풀거나 제사상을 차린다는 의미로도 쓴다. ‘설연(設宴·宴:잔치 연)’이 잔치를 베푼다는 뜻이고 ‘진설(陳設·陳:베풀 진)’이 제사상을 차린다는 뜻이다. 베푼 잔치자리나 차린 제사상은 잔치가 끝나고 제사를 마치면 남은 음식을 정리하고 그릇들을 거두어들여서 잘 씻어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설(設)’했던 것을 거두어들이는 ‘설걷이’인데 나중에 발음대로 표기하다 보니 ‘설거지’로 변하여 순우리말인 양 정착하게 된 것이다. 좀 귀찮더라도 설거지나 비설거지는 때맞춰 스스로 잘 해야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