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로 구성된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이 19일(현지시간) 성명에서 기업의 목적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렸다고 CNBC방송이 보도했다.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은 이날 성명에서 ‘주주중심주의’를 재검토하고 직원과 고객, 사회 등 모든 이해관계자를 중시하겠다는 점을 천명했다. 주가 상승과 배당 등 투자자 이익을 우선시했던 ‘미국형 자본주의’가 커다란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이다.
성명은 주주에게 봉사하고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최우선시해야 한다는 오래된 기업 목적에 대한 정의를 버리는 대신 직원에 대한 투자, 고객에게 가치 제공, 공급업체와의 윤리적 거래, 외부 커뮤니티 지원 등을 기업 목표 최우선 순위로 내걸었다고 CNBC는 설명했다.
성명은 “모든 이해관계자는 필수적”이라며 “우리는 회사와 지역사회, 국가의 미래 성공을 위해 모든 이에게 가치를 제공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날 성명에는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 회장인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을 포함해 아마존닷컴의 제프 베이조스, 제너럴모터스(GM)의 메리 바라, 애플의 팀 쿡, 블랙록의 래리 핑크 등 미국을 대표하는 181개 기업 CEO들이 이름을 올렸다.
최저임금 인상 등 구체적인 행동 계획은 포함되지 않았지만 미국 경제 근간을 이룬 자본주의의 모습을 크게 재검토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막대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기업의 유일한 의무는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수십 년 된 이론을 신봉했던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이 주요한 철학적 전환을 이루게 됐다고 강조했다.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은 1978년 이후 정기적으로 기업 지배구조 원칙을 공표하고 있으며 1997년부터 “기업은 주로 주주를 위해 존재한다”고 명기해왔다.
다이먼 CEO는 이번에 기업 목적을 재정의한 것에 대해 “아메리칸 드림이 존재하지만 흔들리고 있다”며 “우리는 직원과 지역사회에 대한 투자 지속을 약속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래리 핑크 대표는 올해 연례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기업 목적은 단순히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익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라며 “분열이 계속해서 심화함에 따라 기업들은 세계 미래 번영의 중심에 있는 이슈들에 대해 국가와 지역사회에 대한 헌신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변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주주중심주의 재검토는 미국 경제계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피하려는 목적도 있다고 풀이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세제 개혁으로 기업 이익은 늘었지만 임금인상은 상대적으로 둔하다. 기업들은 잉여 자금을 자사주 매입으로 돌려 주가 상승을 연출했다. 혜택을 받은 것은 주식을 가진 자본가와 자사주로 보상을 얻는 경영자에 그쳤다. 이런 불만이 부유층 증세와 민주당 급진 좌파에 대한 지지로 이어져 미국 CEO들의 위기감을 더하고 있다.
다만 모든 CEO가 기업 목적 재정의에 찬성한 것은 아니다. 제너럴일렉트릭(GE)의 래리 컬프 등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 회원인 7명의 CEO는 성명에 서명하는 것을 거부했다.
러트커스대학의 경제학 교수이자 프리드먼의 제자였던 마이클 보르도는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의 새로운 입장에 대해 “기업 경영진이 규제기관처럼 행동하게 될 것”이라며 “이는 기업이 아니라 정부다. 여전히 프리드먼이 옳았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