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블레싱호-르포①] "23명 선원, 23년차 선장" 24시간 잠들지 않는 이 곳

입력 2019-10-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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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간의 출항 준비, 1시간의 접안 작업…속도 보다는 안전

"올 라인 렛 고(All line let go)!"

드디어 10시간의 오랜 기다림 끝에 출발을 알리는 선장의 한 마디가 온 배에 힘차게 울려퍼진다.

11일 오전 8시 54분. 길이만 무려 330m에 달하는 현대상선의 ‘HMM블레싱호’가 서서히 중국 닝보항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옆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거대 선박을 터그 보트(예인선) 2척이 양끝에서 끌며 방향을 틀어준다. 조그만 보트에 비행기에 사용될 수 있는 규모의 엔진이 가동되고 있다는 비밀이 숨어 있었다.

선박은 움직이는데, 정박을 위해 묶어둔 밧줄 하나가 풀리지 않고 있다. 긴박한 순간이었다. 선장과 항해사 간의 긴급 교신 끝에 밧줄은 부여잡고 있던 거대한 배를 놓아주었다.

▲터그 보트(예인선)가 현대상선의 ‘HMM블레싱호’의 방향을 틀어주고 있다. 하유미 기자 jscs508@
▲터그 보트(예인선)가 현대상선의 ‘HMM블레싱호’의 방향을 틀어주고 있다. 하유미 기자 jscs508@

이게 끝이 아니다. 닝보 앞바다는 배들이 너무 많아 교통이 혼잡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정해진 해로가 없어 자칫하면 배가 충돌할 수 있어 그 어느때보다 긴장해야 하는 순간이다. 출발신호 이후 1~2시간이 지나서야 블레싱호는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했다.

'세계 최초' 스크러버 설치한 대형선박 = 블레싱호는 지난해 5월 한진중공업 수빅조선소로부터 인수한 1만1000TEU급 컨테이너선 2척 중 하나로 프로미스호와 쌍둥이다.

1TEU는 20피트 컨테이너로 이 배는 1만1000개의 컨테이너 박스를 적재할 수 있다는 의미다. 길이는 330m로 이 배를 세운다면 프랑스 에펠탑(300m)보다 높다.

특히 이 배는 고효율 친환경 선박으로 배기가스 내 황산화물(SOx)을 저감시켜주는 '스크러버'를 전 세계 1만TEU급 이상 대형 선박 중 유일하게 장착했다.

게다가 아직 2살밖에 되지 않은 새 선박으로 노후화 된 선박 대비 선박의 안전, 성능이 우수하다. 통상 선박 수명은 20~25년이다.

▲배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선박의 중심부인 브릿지(조종실). 하유미 기자 jscs508@
▲배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선박의 중심부인 브릿지(조종실). 하유미 기자 jscs508@

‘23명 선원, 23년차 선장’… 24시간 예의주시 = 블레싱호는 23년차 베테랑급 김종대 선장의 지휘 아래 총 23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1~3등 항해사들이 화물, 항해, 장비보수 및 안전을 책임지며 24시간 교대로 근무한다. 선장이 전체적으로 컨트롤하되 이들에게 주요업무를 위임한다.

심지어 배가 정박해 있을때도 이들은 컨테이너가 제대로 실리는지, 배의 접안이 안전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등을 매 순간 체크한다.

특히 배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브릿지(조종실)은 선장의 순간적인 판단으로 항로를 결정하는 중심부다.

김종대 선장은 여러 개의 모니터를 예의 주시하며 출입항 시 곳곳에 보이는 수많은 배들, 수심, 날씨 등을 수시로 체크한다.

항로를 막는 배들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배들이 시야에 들어오면 충돌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미세하게 각도를 조절하며 방향을 잡아야 한다. 대형 선박은 자동차와 달리 브레이크를 밟아도 멈추기까지 30~40분 가량 소요돼 충돌 가능성을 인지하는 순간 그때는 이미 늦은거다.

▲김종대 ‘HMM블레싱호’ 선장이 배의 전반적인 안전 및 운항 전략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하유미 기자 jscs508@
▲김종대 ‘HMM블레싱호’ 선장이 배의 전반적인 안전 및 운항 전략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하유미 기자 jscs508@

수심도 수시로 봐야한다. 김 선장은 "컨테이너박스를 실은 후 15m가량 가라앉은 블레싱호는 수심 20m 이하인 곳은 늘 피해야 하므로 바다 전체의 수심을 항상 체크한다"라고 말했다.

김 선장이 갑자기 '12분'이라고 설정돼 있는 모니터를 가리켰다. 12분 이상 브릿지에 있는 그 어떤 기기도 터치하지 않으면 알람이 울린다고 했다. 야간 근무자가 쓰러지는 등 위급 상황을 대비한 조치다. 알람을 끄지 않으면 선장, 전체 선원들 순으로 알람이 울린다. 예컨대 실제 부상자가 발생할 경우 선박은 병원, 선원은 의료진이 돼야 한다.

24시간 돌아가는 배의 심장 '기관실' = 블레싱호 지하에 자리잡고 있는 기관실은 선박의 심장이다. 전체 선원 절반 가까이 되는 9명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대기상태를 유지한다.

선박의 수많은 기기들 중 하나라도 문제가 발생한다면 이들의 손길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육지에서 쓰는 웬만한 장비들을 을 다 갖추고 있으며, 수개월 간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선박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최고의 기술자들이다.

이들은 지하 1층부터 4층까지 연결돼 있는 두 엔진을 수시로 점검한다. 엔진 효율성을 높이되 연료 비용은 절감하기 위해 크기(8기통)는 예전보다 작아졌다. 그럼에도 자동차 한 대 마력(200)보다 무려 300배 가까운 힘을 자랑한다.

▲11일 오전 닝보항을 떠난 ‘HMM블레싱호’가 항해 이틀만에 도착한 부산신항에서 접안하고 있다. 하유미 기자 jscs508@
▲11일 오전 닝보항을 떠난 ‘HMM블레싱호’가 항해 이틀만에 도착한 부산신항에서 접안하고 있다. 하유미 기자 jscs508@

김 선장은 "연료 효율성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최적의 항로를 선택하고 엔진의 분당 회전 수(RPM)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고 노력한다"라고 설명했다.

블레싱호는 비용 절감 뿐 아니라 청결 유지를 위해 배에서 수개월 간 발생하는 산업폐기물, 생활쓰레기를 철저하게 관리한다.

김 선장은 "플라스틱, 병, 캔 등 분리수거 대상을 세분화시켰으며, 쓰레기를 배출할 수 있는 구간을 철저히 준수한다"면서 "이 모든 것은 기록으로 남긴다"라고 언급했다.

접안 작업은 갓난아기 다루듯 = 12일 오후 4시. 망망대해만 들어오던 시야에 부산 신항이 보이기 시작했다.

얼핏 봐서는 10분이면 끝날 것 같은 접안이 완료되기까지 1시간 가량 소요됐다. 선박 무게가 7만톤을 넘다보니 아주 약한 부딪힘에도 큰 충격을 느낄 수 있어서다.

이 과정에서도 예인선이 투입된다. 선장의 지시에 따라 배를 밀고 멈추는 수없이 반복한다. 움직임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컨테이너선은 어느덧 안벽에 완벽하게 붙었다. 오후 5시 15분, 선장의 오케이 싸인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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