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관용과 제도적 자제가 무너지는 위기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미국 정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경선서 걸러내지 못한 것처럼 우리도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막지 못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포퓰리즘이 이미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 사회 곳곳에서 기승을 부린다. 가짜뉴스도 넘쳐난다. ‘사실이 진실이 아닌 인식이 진실’인 세상이 가까이에 있다. ‘조국 사태’가 이를 잘 보여준다. 진보와 보수진영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갈등의 뿌리는 사실이 아닌 주관적인 그들만의 ‘인식의 진실’이다.
정치권은 이런 비정상을 바로잡기는커녕 되레 부추긴다. 정치의 자정기능은 사라졌다. 민주당의 젊은 정치인 두 명이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유다. 그들을 질식케 한 것은 ‘부끄럽고 희망 없는 정치’다. 이철희 의원은 불출마 입장문에서 “우리 민주주의는 정치의 상호부정과 검찰의 제도적 방종으로 망가지고 있다. 정치가 해답을 주기는커녕 문제가 돼 버렸다”고 개탄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정치가 국민의 걱정거리가 된 지 오래다. 여야는 경쟁자가 아닌 적이다. 여는 야를, 야는 여를 청산 대상쯤으로 여긴다. 공존하는 경쟁자라는 최소한의 인식도 없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실종되고 싸움이 일상화된 건 당연한 결과다. 이 의원은 검찰의 제도적 방종을 언급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집권세력의 방종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찰을 정치에 이용한 것은 다름 아닌 집권 세력이었다. “정치인이 되레 정치를 죽이고 정치 이슈를 사법으로 끌고 가 그 무능의 알리바이로 삼았다”는 이 의원 말에 다 녹아 있다.
최근 여권의 언론 공격이 도를 넘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 장관 사퇴 때 ‘언론의 자기 개혁’을 주문한 데 이어 지난달 25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선 “과연 언론이 균형 있게 사실을 전달하는지 스스로 성찰이 필요하다”고 했다. 언론에 대한 깊은 불신과 불만이 ‘개혁’과 ‘성찰’이라는 단어에서 묻어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언론의 자유는 보호받을 자격이 있는 언론에만 해당한다”고 한발 더 나갔다. 법무부가 언론을 옥죄는 훈령과 규정을 쏟아내는 것은 그 연장선상이다.
불안한 국정운영도 분명한 위기 신호다. 무리한 정책 실패는 국민과 국가를 어렵게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진보 가치인 평등논리를 앞세워 정책을 쏟아냈다. 결과는 참담하다. 정치 경제 외교가 다 흔들리고 있다. 경제는 저성장 늪에 빠져들고 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주 52시간제 도입 등이 핵심인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역풍이 거세다. 조국 전 법무장관 임명은 정의와 공정이라는 정권의 가치를 훼손한 최악의 인사 참사였다. 국민 과반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조국 카드’를 밀어붙여 심각한 국론 분열을 초래했다. 조국 사태로 공정성이 사회 화두가 되자 문 대통령은 불쑥 대입 정시 확대를 꺼냈다. 교육부조차 사전에 몰랐다고 하니 졸속 추진이 우려된다. 다각 갈등을 빚는 외교 안보는 말할 것도 없다. 일본과는 징용문제로 최악의 대결 국면이고 남북관계는 꼬일 대로 꼬였다. 문 대통령이 평화경제를 강조한 다음 날 북한이 금강산 시설 철거를 선언한 게 현주소다. 미국과는 방위비 증액을 놓고 불협화음이 나온다. 더 큰 위기는 위기를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돌고 있다. 등산으로 치면 하산을 시작하는 시점이다. 안정적인 국정 관리가 절실하다. 더 이상의 시행착오는 곤란하다. 경제 인사 등 실패한 정책은 과감히 버려고 정책기조를 바꿔야 한다. 그게 다수 국민의 목소리다. 국민을 이기는 정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