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을 심사하는 ‘예산 국회’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예산 심사를 지역구 민원 해결 창구로 이용하려는 정치권 관행이 올해도 되풀이되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본래 의무인 예산 심의보다 자신의 지역구 예산 챙기기를 우선시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국회 속기록에 따르면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경우 지난달 30일 예결특위 전체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에게 ‘도서지역 농산물 해상운송비 지원 사업’과 관련해 질의했다. 섬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의 원가를 낮추기 위한 이 사업은 위 의원의 지역구인 서귀포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질문’의 형태를 띠었지만, 사실상의 ‘지역 민원’인 셈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향해 “예비타당성 기간을 단축한다든지 아니면 허들을 조금 높여 줘서 면제 범위를 확대해 준다든지 등 해서 공기업이 적극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한 조승래 민주당 의원의 질의도 유사한 성격이다. 전체 공기업을 대상으로 말한 것처럼 보이지만, 조 의원의 지역구인 대전 유성구에 유치한 ‘장대 도시첨단산업단지'와 관련돼 있다.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의 지역구 챙기기는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대구 북구갑 당협위원장을 맡은 정태옥 자유한국당 의원 역시 같은 날 질의에서 지역구 연관 사업인 물산업유체성능시험센터 사업비 확정을 요구했다. 인천 연수구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이정미 정의당 의원 또한 지역구 인근의 외곽순환고속도로 건설 구간의 조속한 완공을 촉구했다.
국회의원들의 예산 민원은 비단 예결특위 회의장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예산 시즌에 국회를 찾은 정부 관료는 여기저기 불려 다니기 일쑤다. 각 상임위원회의 예산 심사에서도 각종 민원과 압박이 이뤄진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한 의원은 지역구와 관련이 깊은 기술사업을 정부 연구개발 과제에 포함하도록 담당 관료를 압박하기도 했다.
국회의원의 예산 로비는 담당 상임위와 전혀 관련이 없는 정부부처에도 이뤄진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인 여상규 한국당 의원의 경우 정부 고위 관료에게 지역 민원을 제기하기 위해 법사위 회의를 잠시 정회시키기도 했다. 관료 출신인 한 야당 국회의원은 기재부 예산실장을 국회로 호출해 지역구를 통과하는 철도예산 마련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시다발적인 지역구 민원은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부풀리는 효과로 이어진다. 매년 국회 심의를 거친 예산안은 정부 안보다 SOC 부문이 크게 증가하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SOC 부문 예산안 증액 규모는 △2016년 4000억 원 △2017년 4000억 원 △2018년 1조2000억 원 △2019년 1조3000억 원 등으로 해마다 증가 추세를 보여 왔다.
특히 올해의 경우 내년 총선을 앞둔 20대 국회 마지막 예산안이라는 점에서 ‘예산 로비’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구 사업 관련 예산을 따내면 표를 얻는 데 도움이 된다고 계산하기 때문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매년 총선 직전 예산 심사의 경우 예산안이 정부 안보다 훨씬 금액이 커졌다”면서 “11일 이후로 예결특위의 예산안조정소위(옛 계수조정소위)가 가동되면 지역구 민원이 지금보다 더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