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정보회사가 법원의 강제조정 후에도 이동통신사들로부터 위임받은 채권 추심을 계속한 것은 위법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통사가 직접 추심을 한 것은 아니더라도 신용정보회사 등을 통한 간접적인 행위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다.
서울고법 민사14부(재판장 남양우 부장판사)는 7일 서민민생대책위원회 외 103명이 SK텔레콤ㆍKTㆍLG유플러스를 상대로 “위법한 채권 추심으로 인한 정신적 손해를 배상하라”며 낸 소송에서 양측의 항소를 기각했다.
항소심은 SK텔레콤과 KT의 불법 추심 행위를 일부 인정한 1심 판결을 유지했다. LG유플러스는 증거부족 등을 이유로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앞서 1심은 이들의 불법행위를 인정해 SK텔레콤(5명)과 KT(3명)에 각각 위자료 2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재판은 휴대전화 판매점의 보조금 사기 사건이 계기가 됐다. 사기범 일당은 2011년 11월 이동통신 판매점을 개설해 휴대전화 개통 시 이통사에서 나오는 보조금을 노리고 가입자를 모았다. 이들은 ‘휴대전화 회선 1대당 15만 원, 2대당 30만 원, 3대당 50만 원’을 지급한다며 광고했다. 개통한 휴대전화는 판매점에서 보관하고 6개월 후 해지하면서 잔금을 완납해 피해가 없도록 한다는 등의 방법으로 피해자들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했다.
사기범 일당은 1405명의 명의로 개통한 휴대전화 이용요금 등을 일정 기간까지만 내는 수법으로 수십억 원을 편취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피해자들 명의로 연체된 휴대전화 이용요금은 연체 상태로 남았다. 결국 피해자 중 일부인 원고들은 이통사를 상대로 채무부존재 소송을 제기했다. 사기로 인한 요금인 만큼 변제 의무가 없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소송 진행 중에도 신용정보회사의 추심은 계속됐다. 원고들은 채무의 존재를 다투는 소송이 진행 중일 때는 추심행위를 할 수 없다는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신용정보회사의 불법 추심 행위를 이통사들이 방조한다며 2014년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법원은 강제조정을 통해 채무부존재 소송이 모두 확정될 때까지 채무 변제를 독촉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했다.
법원의 강제조정 후에도 신용정보회사들은 채무 상환 독촉 문자 메시지와 가압류 통고서 등을 보내는 등 압박했다. 이에 원고들은 이통사를 상대로 두 번째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선행 손해배상(첫 번째) 소송의 강제조정은 이통사들이 원고들을 채무 불이행자로 등록하지 않고 이미 등록돼 있으면 삭제해야 한다’고 정해 신용정보회사를 통한 채권 추심 행위도 금지하고 있다”며 “SK텔레콤과 KT는 선행 손해배상 소송이 정한 의무를 위반한 불법행위를 했고 그로 인해 원고들이 정신적 손해를 입게 됐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한편 항소심 선고 후 서민민생대책위원회 김순환 대표는 “채무부존재 소송 중에는 채권 추심 등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법원이 인정했다는 점에서 다행이다”면서도 “추심 문자 등을 삭제한 피해자들은 인정해주지 않은 것에 대해선 대법원에 상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