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도의 세상이야기] 누가 주인인가?

입력 2019-11-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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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객원교수, 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주인’이란 사전적 의미에서 ‘대상이나 물건 따위를 소유한 사람’ 또는 ‘집안이나 단체 따위를 책임감을 가지고 이끌어 가는 사람’을 일컫는다. 전자는 단순히 ‘소유’의 의미만을 가질 뿐, 우리는 통상 후자가 있어야 주인의식이 있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많은 사람들이 주인의식은 없으며 단지 주인으로서 권리만을 행사하려 한다고 하는 것도 후자에 근거한 비판이다. 진정한 주인이 되려면 여기에 더해 상대방을 배려하고 상생하는 노력이 따라야 하지 않을까?

지난해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 시골집이 비어 있었다. 올여름에 갔더니 집안 호랑가시나무그루에 새 한 쌍이 둥우리를 틀고 있다.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가니 난리가 났다. 새끼들까지 아우성이다. 아버지 계실 때도 살았을 터인데 이처럼 시끄럽지 않았다. 이제는 저희들이 주인인데 낯선 물체가 나타나니 방어 본능이 발동한 것이다.

그뿐 아니다. 종전엔 뜰이 잔디로 가지런했는데 이제는 이름 모를 잡초들로 무성하다. 심지어 쑥은 내 허리춤에 이를 정도로 자랐다. 보다못해 집사람이 맨손으로 잡초를 한 움큼 뜯어내 본다. 몇 번을 하더니 이내 멈춘다. 크지 않은 정원이어도 풀이 한참 자라니 쉬이 제거되지 않는다. 그런데 조금 지나 사달이 났다. 집사람의 손이 부풀어 오른다. 뜯을 때는 몰랐는데 그 속에 사는 눈에 띄지 않던 조그만 벌레들이 어느 사이 손등을 공격하였다. 낯선 사람들이 와서 자기들의 보금자리를 마구 헤쳐 놓았기 때문이다.

뒤뜰을 돌아가니 대나무가 어느새 텃밭까지 들어왔다. 대나무가 추운 겨울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을 막아주고 외부와 경계를 이루는 담벼락 역할을 했는데 이제는 정원의 꽃나무들을 위협한다.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란 곳은 햇볕조차 들지 않아 그곳에 있었던 식물들은 말라 죽는다. 주인이 집을 비우니 저희들끼리도 그곳의 주인이 되겠다고 쟁탈전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 후 얼마 안 되어 서울 부근에 있는 천변을 산책하였다. 이틀 전 태풍으로 큰 비가 쓸고 간 뒤끝인지라 시냇가의 억새들이 물이 씻겨간 방향으로 완전히 가로누웠다. 쏟아지는 물줄기에 떠내려가지 않은 것도 다행스러워 보였다.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그후 일주일이 지나 깜짝 놀랐다. 어느 사이 가로누웠던 억새들이 꿋꿋이 살아나서 태양 볕을 마주하고 있다. 이제 억새풀 밑으로 물이 조용히 흐른다. 무더운 여름날 이 지역에 흐르는 물은 나그네이고 주인은 억새이다.

입동이 지나고 다시 시골집을 방문하였더니, 계절이 바뀌면서 어제의 주인들이 사라졌다. 주인들이 자기 영역을 지키려고 아웅다웅할 때에는 긴장감까지 느껴졌는데 이제는 공허하다. 시골집에 살던 새는 둥지를 버리고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뜰에 있던 잡초들도 누렇게 변해 쓰러져 있다. 아마 여름날 그 속에서 주인 행세를 하던 조그마한 곤충들도 땅속 깊이 알을 낳고 사라졌으리라. 뒤뜰에 대나무도 꽃, 나무, 푸성귀들이 사라진 후로는 찬바람 속에 외로이 서 있을 뿐이다. 집 부근 하천 변의 억새도 노랗게 변하고 이내 허리를 수그리고 있다.

그렇지만 새봄이 오면 겨울 동안 사라졌던 터줏대감들이 다시 주인이 되어 나타날 것이다. 이들에게 주인 자리를 내주지 않으려면 겨울날 부지런히 밭을 갈고, 뒤뜰의 대나무도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도 마음이 바빠진다.

이제서야 아버지께서 시골집에 있으면 사시사철 왜 그리 바쁘셨는지 제대로 이해가 된다. 아버지는 언젠가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시골에 가신 후로 늘 “이제는 집에 모든 것을 다 해놓았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했다. 그러고도 틈만 나면 시골집에 가셔서 뜰을 돌보고 나무 가지를 정리하셨다. 이제 보니 집 주인 노릇을 하려면 이 정도의 노력은 필수적이었다. 그래야 그곳에 사는 동식물도 주인 취급을 해주고 함께 살아 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기껏해야 일 년에 몇 번 찾아보는 나는 주인 자격이 없다.주인 노릇을 하려면 이들과 함께할 준비를 미리미리 해야 하는데 나는 턱없이 부족하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많은 자리를 옮겨 다녔다. 때로는 순환보직의 인사원칙에 따라 한 곳에 오래 머물 수가 없어서, 아니면 승진을 하거나 다른 곳에 파견을 가야 해서 자리를 옮겨 다니다 보니 어느 사이 조직의 정점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때부터 늘 궁금했다. 내가 이 자리의 주인인가? 많은 경우 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주문을 했지만 정작 나는 떠날 시기를 생각했다. 공직이란 누구의 전유물이 아니기 때문에 내 임무를 다하면 미련 없이 물러나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가족이나 지역사회는 다르다. 원활하게 기능하려면 그곳을 위해 봉사하는 일꾼들은 무한 책임의 주인의식이 필요하다. 내년에 총선이 다가온다. 진정한 일꾼을 뽑는 주인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해 볼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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