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들은 자체적인 판단에 따라 인수기준을 수시로 바꾼다. 손해율에 따라 한도를 확대하고 축소하는 작업이다. 보통 달 단위로 변경하며, 영업 현장에는 미리 공지한다. ‘다음 달부터는 보장이 축소되니 가입을 서두르라’라는 절판 마케팅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인수기준은 설계사는 물론 본사 담당자들도 예상하기 힘들다.
“아, 또 속았네!” “이럴 줄 알았다!”. 인수기준 변경 공지는 한 번에 들어맞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이달까지만 판매한다던 상품은 연장에 연장을 거듭하고, 보장한도가 축소된다던 상품은 오히려 확대되는 경우도 있다. 보험사는 언제 그랬냐는 듯 판매 기간 연장을 재공지할 뿐이다. 이 같은 영업행태는 최근 들어 잦아져 아예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설계사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이유는 같은 계약이어도 체결 시점에 따라 소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설계사들에게 지급되는 시책비(판매촉진비)는 주차마다 규모가 다르다. 통상 계약이 적은 1주차는 최대 400%까지 오르고, 계약이 몰리는 월말은 100% 정도다. 보험사 공지를 믿고 판매가 종료될까 봐 낮은 시책에도 계약한 설계사는 시책을 더 받을 수 있었는데, 손해를 보게 된 것이다. 비용도 낭비다. 판매가 종료 공지에 청약서를 파기했다가 연장이 되면 새로 찍어내는 일도 일쑤다. 약관도 변경된 기준에 따라 다시 뽑아야 한다. 보장 한도가 축소된다는 얘기에 가입을 서두른 소비자의 원성은 덤이다.
문제는 궁극적인 피해자는 소비자라는 점이다. 소비자에 가장 가까운 접점에 있는 보험관계자는 설계사다. 믿었던 설계사의 말을 믿고 가입을 했더니 오히려 보장이 늘어난다. 소비자의 피해로 직결되는 경우다. 이는 시책 규모에 따라 일부러 계약을 미루거나 앞당기며 악용하는 설계사들을 양산하는 것이기도 하다. 금융당국은 ‘보험 신뢰도 제고’를 위해 갖은 방법을 고안하고 있다. 설계사의 수수료를 낮추는 대신 보험료를 낮추는 방안 등 방법은 다양하다. 다만 당국은 이 요상한 관행부터 단속하길 바란다. 보험사와 판매자 간의 신뢰는 보험사와 소비자와의 신뢰만큼이나 중요하다. 보험소비자가 첫 번째로 경험하는 보험 신뢰도는 ‘내 보험 가입’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