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대에 필요한 능력과 사명감으로 꽉 찬 사람’이 인재라 여긴 구 명예회장은 이러한 인재는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 가운데서 스스로 성장하며 변신하고 육성되는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때문에 구 명예회장은 완성된 작은 그릇보다는 가꾸어 크게 키울 수 있는 미완의 대기(大器)에 더 큰 기대를 걸었다. 즉 인재를 선발하는 것도 잘해야겠지만, 그보다 인재를 육성하는 교육 제도에 무게를 두어 훌륭한 인재로 성장할 기회를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다.
이에 구 명예회장이 그룹의 영속적 발전을 위해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실천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인재 양성기관인 ‘LG인화원’의 설립이었다. 구 명예회장은 인화원을 건립하면서 ‘기업의 백년대계를 다지는 가장 확실한 투자’라는 표현으로 그룹 차원의 관심과 협력을 당부키도 했다.
1988년 인화원 개원식에서 구 명예회장은 “기업은 인재의 힘으로 경쟁하고 인재와 함께 성장한다. 기업의 궁극적 목표인 인류의 번영과 복지도 인재의 빛나는 창의와 부단한 노력에 의해서만 이룩될 수 있다. 인재 육성은 기업의 기본 사명이자 전략이요 사회적 책임이다”라며 인화를 바탕으로 한 인재 육성의 의지를 천명했다.
이후 LG인화원은 교육 하드웨어는 물론 소프트웨어 측면을 강화해 실무 실행력 증진에 초점을 맞추며 기존의 이론 교육 중심 체계를 혁파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1년에는 기업 교육과정의 우수 사례로 영국 파이낸셜타임즈가 뽑은 세계 12대 기업 대학에 선정되기도 했다.
재계 원로들의 추대로 전경련 회장을 수락한 구 명예회장은 취임 기자회견을 통해 “전경련이 시대적 상황에 맞춰 새로운 발전이 요청되는 이때, 분에 넘치는 중책이긴 하나 징검다리가 돼 최선을 다하겠다”고 천명했다.
구 명예회장이 18대 전경련 회장에 재임한 1987년부터 1989년까지는 우리 사회의 모든 질서가 재편되는 격동의 시기인 데다 대내적으로는 온 힘을 다해 추진하는 경영혁신과 사업장의 대형분규가 맞물리는 참으로 어렵고 벅찬 시기였다.
취임 후 그는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을 통합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전경련 산하에 ‘경제사회개발원’을 설립하고, ‘국민 속의 기업인, 국민경제를 위한 기업’을 모토로 기업 이미지 개선 활동을 전개했다. 전경련과 기업들이 사회와 소통하는 일에 본격적으로 나선 일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구 명예회장의 전경련 회장 재임 기간은 2년 단임이었다. 재임 당시 88서울올림픽과 같은 범국가적 행사를 치르고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인 민간주도 경제의 틀을 잡아가는 데 노력하며 소임을 다했다는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