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아가 7년 만에 암네리스로 돌아왔다. 2010년, 2012년에 이어 뮤지컬 '아이다'와 세 번째 만남이다. 아이다는 관객들도, 정선아 스스로도 인생작이라고 꼽는 작품이다. 이 역할로 그는 제19회 한국뮤지컬대상과 제7회 더뮤지컬어워즈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특히 암네리스가 '마이 스트롱기스트 수트(My strongest suit)'를 부르며 패션쇼를 벌이는 장면은 아이다의 핵심 넘버로도 꼽힌다.
최근 아이다의 마지막 시즌 공연 준비로 여념이 없는 정선아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만났다. 아이다는 '전쟁 속에 피어난 사랑이야기'를 주제로 이집트의 딸 암네리스와 누비아의 공주 아이다, 그리고 그 두 여인의 사랑을 받는 이집트 장군 라다메스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팝의 거장인 영국 싱어송라이터 엔턴 존과 뮤지컬 가사의 전설 팀 라이스가 탄생시킨 대작이다. 2005년 국내 초연된 아이다는 73만 관객을 모으며 큰 호응을 받았다.
2020년 4월 19일 부산 드림씨어터 공연을 끝으로 아이다가 막을 내린다. 국내에서 더이상 오리지널 버전을 볼 수 없게 됐다. 아이다의 제작자인 디즈니 씨어트리컬 프로덕션이 이번을 끝으로 아이다의 브로드웨이 레플리카 버전 공연을 중단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아이다가 시작 됐네요. 아이다는 인간 정선아, 배우 정선아에게 너무나도 고마운 작품이에요. 그런 아이다의 문을 함께 닫는다는 게 감회가 새로워요. 요즘 공연하면서 정말 기쁜데, 너무 슬퍼요. 영원히 끝이 없을 것 같은, 사랑하는 아이다가 떠난다는 게 아직은 실감이 안 나요."
지난해 뮤지컬 '웃는남자'를 마지막으로 가졌던 휴식기를 9개월 만에 끝낼 수 있었던 것도 아이다 때문이다. "제가 생각한 유학 기간은 9개월이 아니었어요. 제 마음을 열리게 하는 작품, 정말 하고 싶은 작품이 있을 때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했죠. 아이다로 돌아오게 됐을 때 감사한 마음뿐이었어요."
그는 아이다 외에 별다른 새해 목표를 세워두지 않았다. 당장 크리스마스 계획도 없다. 좋은 컨디션으로 매회 관객들에게 좋은 공연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만 가득하다.
"아이다는 정선아의 상징작이자 인생작이자 저를 행복하게 한 작품이에요. 저는 아이다를 하면서 힘들다고 생각한 적도 없어요. 오히려 좋은 에너지를 얻어가고 있습니다. 시즌이 더 남았다고 하더라도 아이다에 대한 저의 사랑은 끝나지 않을 거예요. 제가 노래를 못하고 춤을 못춰서 암네리스 안 시켜줄 때까지 하고 싶어요."
다음은 정선아와 일문일답
- 2002년 렌트로 데뷔했다. 어느덧 데뷔 18년차 배우가 됐는데.
"나이는 숫자일 뿐, 지금도 데뷔가 엊그제 같다. '정선아 정말 많이 컸다'는 생각을 스스로도 하지만, 시간이 이렇게 많이 지났다고 느끼지 못했다. 데뷔 당시 함께했던 선배들과 함께 지금도 공연을 하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고 기분이 이상하다."
- 최근 중국에서 9개월 간 어학연수를 했다. 중국 진출을 염두에 둔 것인가.
"지금까지 18년간 쭉 달려왔는데, 쉬는 시간이 필요했다. 미국은 가족을 보러 많이 갔지만, 정작 가까운 나라 중국에 대해선 잘 몰랐다. 중국에서 뮤지컬 배우가 아닌 정선아로 살아보고 싶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어학원에서 5시간 넘게 앉아서 공부하고 과외도 받았다. 색다른 경험이었다. 중국에 있으면서 '마음을 흔드는 작품이 없어서 이곳에 계속 있으면 어쩌지', '관객들이 날 잊으면 어쩌지'라는 생각도 했다. 요즘 매회 저를 향해 박수 쳐주는 관객에게 절하고 싶은 마음이다."
- '정암네(정선아+암네리스)'라는 애칭이 있다. '마이 스트롱기스트 수트'는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배우보다 더 잘 소화했다는 평가가 나오는데.
"노래 하나로 많은 분들한테 사랑을 받았다. 대학 교수들들이 대학 입시곡으로 입시생들이 너무 많이 불러 지겨울 정도라고 하더라.(웃음) 저한테는 너무 고마운 곡이다. 그 신 하나로 여러가지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되지 않았나. '마이 스트롱기스트 수트'는 '정선아'다."
- 웨스트엔드나 브로드웨이에 진출하고 싶다는 소망은 없나.
"없다.(웃음) 있는 자리에서 더 잘하고 싶고,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뮤지컬 시장이 정말 많이 커졌고, 그 황금기를 함께했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보다 우리나라 뮤지컬시장이 더 커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곳은 관광객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자국민 파워니까. 이 시장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배우로서 누가 되지 않게 열심히 하고 싶다. 일터가 있어야 살 수 있는 거고, (제가) 무대에 설 수 있어야 관객이 행복할 수 있지 않나."
- 이번 시즌엔 아이다로 관객을 만날 뻔 했다고.
"처음 오디션 봤을 때 아이다로 봤었다. 물론 아이다가 욕심이 날 수 있다. 아이다로 한 번 외도를 해볼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암네리스를 버릴 수 없다. 암네리스로 너무나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관객들의 미소와 웃음소리를 잊을 수 없다. 암네리스로 관객에게 보여줄게 아직 너무 많다. 그 어떤 것도 암네리스와의 사랑을 무너뜨릴 수 없다. 첫사랑처럼 마지막도 암네리스로 멋있게 해보고 싶다. 관객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고 싶다."
- 암네리스만 세 번째다. 암네리스와 많이 닮은 거 같다.
"처음보다 지금이 더 두렵다. 마지막이란 생각에 책임감도 커졌다. '정선아, 암네리스 잘하잖아'라는 관객들의 기대치가 있지 않나. 진짜 사랑하지 않으면 무대에 설 수 없다. 첫사랑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연기할 때도 많다. 저도 바보다. 정말 좋아하면 다른 게 보이지 않는다. 내가 평생을 바쳐서 사랑했던 남자와 친구로 받아들인 노예를 한꺼번에 잃고 아버지도 돌아간 상황에서 혼자 모든 짐을 짊어지고 나아가야 한다. 대사를 '툭' 하고 내뱉을 수가 없다. 매회 정말 힘들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마음을 찌르고 눈물이 난다." (정선아는 눈물을 글썽였다.)
- 아이다2가 나오면 함께 할 것인가.
"더 늙기 전에 나와야 한다. 50살이 돼서 암네리스를 할 수 없지 않나. 아직도 마지막이라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 목이 터져라 다 쏟아내고 있다. 수많은 사람, 수많은 작품 중 아이다를 만나고 암네리스를 만난 것은 굉장한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