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왜 노동당을 지지해왔던 이곳의 유권자들이 이탈했는가? 이번 총선에서 제1 야당인 노동당은 겨우 203석을 얻어 1935년 이후 최악의 결과였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브렉시트라는 모든 것을 빨아들인 블랙홀, 그리고 인물, 선거공약의 문제점이 결합해 이런 결과가 나왔다.
이번 총선은 브렉시트를 두고 의회가 보인 결정 장애를 타개하려고 실시되었다. 집권 보수당의 일부는 경제에 큰 손실을 끼치는 강경 브렉시트를 고집했다. 반면에 하원의원의 과반은 손실을 최소화하는 브렉시트를 원했기에 강경 브렉시트를 저지했다. 하원이 브렉시트 조약을 비준하지 못하는 상황이 10개월 넘게 계속되자 당시 보리스 존슨 총리가 조기총선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지난해 7월 말 당수 교체로 선거 없이 총리가 된 그는 강경 브렉시트를 고집하면서 사실상 조기총선을 유도했다.
보수당의 선거공약은 ‘브렉시트 완수’로 아주 간단명료했다. 반면에 노동당은 가장 급진적인 공약을 내걸었다. 철도와 전기, 가스 같은 주요 기간산업의 국유화, 근로자 250명 이상을 고용 중인 기업은 주식의 10%를 노동자 대표가 운영하는 기금에 증여, 한마디로 1980년대 보수당의 대처 총리가 단행했던 정책을 번복하려 했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로 커져 온 경제적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해서 이런 정책대안이 나왔다. 그렇지만 유권자들, 특히 노동자들의 브렉시트 피로감이 너무 컸다.
이번에 보수당이 빼앗은 노동당의 아성은 3분의 2 정도가 브렉시트를 지지했다. 노동당은 브렉시트 문제로 내분을 거듭하다가 경제에 덜 피해가 가도록 EU와 재협상을 하고 이를 국민투표에 회부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노동당을 지지했던 노동자들은 이를 배신으로 여겼고 상당수가 브렉시트 완수를 강조한 보수당으로 돌아섰다.
여기에 인물의 호불호도 한몫했다. 노동당의 제레미 코빈 당수는 평생을 급진 좌파로 살아왔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탄압한다는 신념을 지닌 그는 수차례 당에서 불거진 반(反)유대주의에 마지못해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영국은 항상 역사의 승자 편에 서 있었다는 자부심에서 반유대주의를 비판하는 게 상식이다. 보수당의 존슨은 전형적인 포퓰리스트 정치인이다. 그런데도 반유대주의가 발목을 잡아 총리 적합도에서 존슨이 코빈보다 10% 정도 앞섰다. 노동당의 급진정책에 대해서는 사용자뿐만 아니라 노동자들도 우려했다. 공약대로 기업 주식의 10%를 노동자에게 이관하면 기업이 수익성을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동당은 양대 지지층인 지식인과 노동자 가운데 이번에는 지식인에 치우친 공약을 제시했다. 이 당은 2010년부터 네 번이나 총선에서 연패했다.
아무리 좋은 공약이라도 적절한 시기에 신뢰할 만한 인물이 유권자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러나 노동당은 핵심 지지층의 하나인 노동자의 마음을 읽지 못했다. 상당수의 노동자들은 2016년 6월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에서 EU 탈퇴를 지지했다. 경제에 손해가 됨을 알았지만 정체성을 훨씬 더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이들은 너무 많은 EU 시민들이 영국으로 몰려와 자국이 정체성을 잃는다며 EU 탈퇴를 원했다.
이제 보수당은 안정적인 과반을 확보해 영국은 EU에서 탈퇴한다. 그러나 시작일 뿐이다. 영국 무역의 절반을 차지하는 EU와 긴밀한 경제적·비경제적(정치·외교안보) 관계를 맺는 게 영국의 국익이다. 그런데 존슨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EU와의 신관계를 올해 안에 매듭짓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올해 12월 31일까지의 과도기를 연기하지 않겠다는 것. 전문가들은 영국과 EU의 포괄적 신통상 관계가 1년 안에 체결될 가능성을 아주 낮게 보고 있다. 때문에 올 하반기 ‘노딜’ 리스크가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영국이 EU의 규정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규정을 만들수록 EU 단일시장 접근은 줄어들고 영국 경제에 손실이다.
보수당은 이번에 표를 얻은 북부 및 중부 잉글랜드 지역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다. 2017년부터 3년간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야기한 불확실성 때문에 영국의 경제성장률은 영국을 제외한 EU 27개 회원국보다 낮았다. 정부 주머니는 두둑하지 못한데 경제성장률은 하락 중이고 쓸 돈은 많아졌다. 집권 보수당이 이번에도 마법을 부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