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기는 피해 회복이 쉽지 않다. 사기범을 잡아도 이미 범죄수익을 탕진했다면 피해자들은 돌려받을 길이 없다. 수사기관 등에서 운좋게 은닉한 범죄수익을 찾아내더라도 완벽히 구제받기는 어렵다.
대검찰청은 지난해 3월 급증하는 민생 범죄에 대처하기 위해 ‘서민 다중피해 범죄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그러나 여전히 피해자들에게 재산을 되찾아 주는 데 난항을 겪고 있다. 제도적 허점이 많기 때문이다.
◇조은D&C 분양 사기… 추징보전 청구 기각 = 김혜은(가명) 씨는 2016년 분양 사업에 투자하면 1년 뒤 이익금 30~40%를 원금과 함께 돌려준다는 말을 믿고 돈을 넣었다. 1년이 지나고 그의 통장엔 원금과 이익금을 합한 숫자가 찍혀 있었다. 꿈만 같았다. 김 씨는 이 사업에 다시 투자했다. 하지만 이번엔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부산에서 벌어진 조은D&C 분양 사기 사건이다. 이 업체의 대표 조모 씨는 김 씨 등 피해자 418명에게 754억 원을 받아 가로챘다. 검찰 조사 결과 조 씨는 범행이 발각되기 전까지 이들에게 받은 돈을 돌려막기식으로 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검은 이 사건을 TF ‘1호 민생사건’으로 지정했다. 부산지검은 조 씨가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구입한 부동산 등 575억 원 상당을 범죄피해 재산으로 판단해 몰수했다. 부패재산몰수법에 따라 피해자들에게 되돌려주기 위해서다.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1부(재판장 정성호 부장판사)는 지난해 12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조 씨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신청한 형사 배상명령은 각하하고, 검찰의 추징보전 청구는 기각했다. 부패재산몰수법이 정한 범죄피해 재산에 대한 몰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판단에서다.
재판부는 부패재산몰수법의 허점에 대해서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해자 환부에 대한 세부적인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아 민사절차에 의한 회복보다 오히려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검찰은 추징보전 기각결정에 대해 항고한 상태다.
◇지역주택조합 사기 피해자들 ‘발 동동’ = 주택조합 사기 사건에서도 이와 같은 사례를 볼 수 있다. 검찰은 지난해 실체가 없는 업체에 사업권 대금 명목으로 약 30억 원을 지급하는 등 조합에 340억 원 상당의 손해를 입힌 지역주택조합 업무대행사 대표 김모 씨 등을 기소했다.
이들은 주택조합 방식으로 부동산 개발 사업을 주도하면서 조합의 집행부를 측근으로 구성해 범죄를 저질렀다. 용역을 중복으로 체결하거나 금액을 부풀려 계약을 맺은 후 돌려받는 수법을 사용했다. 또 토지 매입 과정에서 저가로 매수한 토지를 조합에 비싸게 넘겨 이익을 얻기도 했다.
창원지검은 관련 회사 10여 개에 대한 계좌추적과 압수수색을 통해 불법수익 215억 원 상당을 추징·보전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조은D&C 사건과 마찬가지로 검찰의 추징보전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3300여 명 정도로 다수이고, 피해액도 상당히 큰 금액”이라면서도 “부패재산몰수법에서 정한 ‘피해자가 재산반환청구권 또는 손해배상청구권 등을 행사할 수 없는 등 피해 회복이 심히 곤란한 경우’가 아니다”고 판단했다.
◇대검 시행령 초안 보고… 피해자들 “못 믿어” =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검은 지난해 부패재산몰수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초안을 법무부에 넘겼다. 시행령에는 피해액 지급 절차·대상을 선정하고, 지급액을 결정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검찰 관계자는 “추후 법적 분쟁이나 부작용을 방지하는 방안까지 세세하게 담았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사기 피해자들이 민사소송과 강제집행의 힘든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형사 재판이 확정되면 피해 금액을 돌려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조은D&C 사건 피해자 허원식(가명) 씨는 “피해자의 고통은 생각도 않고 ‘민생 1호’라고 피해자들이 곧 구제될 것처럼 한다”며 “그러나 몰수 보전된 재산은 피해자들에게 열람도 시켜주지 않고, (검찰이 몰수한 조 씨의 부동산은) 개인 경매가 진행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