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중·일에 이어 이탈리아 등 유럽 전역과 미국, 이란 등지로 확산하면서 반도체 시장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재택근무 확산 등으로 서버용 반도체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반면,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 전방 산업 침체에 따른 세트 수요 감소로 반도체가 'L자'형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와 신용평가사 등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코로나19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코로나19 발병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이전의 침체기에서 회복될 것”이라며 “메모리 반도체 제조 시설이 고도로 자동화돼 있어 타(他)제조업체 대비 노동력 부족과 인력 이동 제한의 영향이 적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피치는 노동 집약적인 휴대전화와 PC 산업은 중국의 제조 지연 또는 중단으로 타격을 받고 이에 따라 모바일 D램 수요도 올해 1분기 감소하겠지만, 이는 서버 제조업체의 수요 증가로 상쇄될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19가 산업별 공급에 미치는 악영향의 강도는 '스마트폰 > 디스플레이 > 반도체' 순으로 분석된다. 노동 집약도에 따라 공급 차질의 강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코로나19에 따라 새로운 수요가 발생했다며, 서버용 D램과 기업용 SSD(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 가격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서버 D램은 1분기 대비 15% 상승할 것이란 기존 전망치를 20%로 올렸으며 기업용 SSD 가격 상승률 전망치도 5∼10%에서 10∼15%로 높였다.
산업계에서는 코로나19 확산으로 텔레워크(Telework) 및 언택트(Untact) 서비스를 지원하기 위한 네트워크와 컴퓨팅 리소스 확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클라우드 업체의 성장성이 견조한 가운데, 신규 데이터센터 투자가 예정돼 있다. 중국은 알리바바, 텐센트, 차이나 모바일, 차이나 텔레콤 등 클라우드 업체와 통신업체들이 데이터센터 용량 확대를 위해 반도체 구매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사실상 재택근무 시스템이 정착될 가능성이 있는데, 이 경우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견기업들도 시스템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서버 용량 증설에 대한 기대가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반면, 모바일 등의 생산 차질로 단기적 수요 충격은 불가피하다는 반론도 나온다. 서버 수요가 모바일 수요 충격을 상쇄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전방 시장이 침체하면서 반도체 업황 회복이 꺾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는 코로나19가 4월 초까지 진정이 된다면 반도체 산업 업황이 'V자'형이나 'U자'형 회복세를 보일 수 있지만, 6월 이후에도 계속된다면 L자형 불황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반도체 수요는 코로나19 확장 기간에 따라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 세트·부품 생산 산업은 현재 중국이 가장 큰 기여를 하고 있는데, 코로나19가 중국 공장 가동률 저하 및 물류 마비를 발생시켜 애플 등 스마트폰 생산량에 타격을 줬다. 세트 생산량 감소는 반도체 수요 둔화로 직결된다.
미국, 유럽 등 코로나19의 세계 대유행 조짐이 보이면서 반도체 수요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선진국 확산 시 소비 위축으로 단기 충격은 신흥국보다 심각할 수 있다.
반도체 업계는 수요 하향 우려가 노출된 상황에서 탄력적으로 공급을 하향 조절하며 시장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재고 감소와 가격 상승, 이익 증가를 목표로 수요를 보수적으로 예측하고 대응하는 것이 재고 감소 및 업황 회복에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최도연 신한금융투자 연구위원은 “D램 업체들은 지난해 미·중 분쟁, 화웨이 제재 등 부정적 수요 흐름에도 공급면에서 탄력적으로 대응하며 지난해 4분기부터 재고 감소에 성공했다”면서 “D램 업체들은 공급을 조절할 충분한 힘이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