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코스피가 1000포인트를 밑돌던 2002년 여의도에 발을 디뎠다. 애널리스트가 자본시장의 꽃이라는 자부심이 있었고, 펀드 시장이 급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보람과 더불어 명예와 보상도 뒤따랐다. 베스트 애널리스트라는 공통된 목표를 향해 갔다. 증권사들은 여전히 브로커리지 위주의 사업 구조였고, 법인 영업의 실적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했다. 리서치센터는 법인 영업을 위해 존재했다. 어떤 이는 애널리스트를 펀드매니저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직업으로 정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증권사 손익 구조에서 부동산 투자를 포함한 IB(투자은행) 부문의 기여가 크게 확대됐고, 법인 영업 기여도는 미미해졌다. 법인 영업 시장은 2011년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 시대를 정점으로 내리막 길이다. 기관 투자의 주도권도 전통적인 액티브 펀드에서 ETF(상장지수펀드) 등 패시브 자금과 연기금으로 넘어갔다. 액티브 펀드가 장기간 고객들의 수익률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탓이다.
개인 투자자들도 한국 주식에 대한 기대 수익률이 낮아지면서 미국, 중국 등 해외 주식에 눈을 돌리고 있다. 소통 방식도 문자화된 보고서 위주에서 동영상 등 채널이 다변화되고 있다. 업종별로는 반도체, 이차전지를 포함한 IT(정보기술)와 Non-IT 업종 간 밸류에이션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 한국 산업의 경쟁력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앞으로 이러한 방향성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이에 따라 리서치센터의 역할과 업무 방향도 바뀌어야 한다. 실적 기여도가 큰 수익 부서에 리서치를 포함한 회사의 자원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법인 영업 이외에 리테일본부 등 다양한 부서를 대상으로 리서치 서비스를 확대해야 한다. 해외 투자 자산에 대한 고객들의 요구가 확대됨에 따라 해외 주식, ETF, 리츠, 인컴자산 등에 걸쳐 글로벌 리서치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밀레니얼 세대 고객과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방송 및 동영상 콘텐츠를 제작해 적극 활용해야 한다. 애널리스트의 자질로서 분석력과 집필력 이외에 ‘예능감’도 요구된다.
한국의 여러 산업의 경쟁력이 정체됨에 따라 업종별 투자 아이디어도 부족하다. 이른바 ‘컬래버(collaboration)’ 보고서를 통해 차별적인 아이디어를 도출하도록 노력해야 하고, 팀 간, 업종 간 협업을 강화해야 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애널리스트로서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는 통찰력 있는 보고서를 생산해야 한다.
리서치센터 내 리더십도 바뀌어야 한다. 과거에는 성과 위주로 관리를 앞세우는 용장형 리더십이 필요했다면, 지금은 구성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솔선수범하는 덕장형 리더십이 요구될 것이다. 리더가 정보를 독점하면 권력이 되지만, 정보를 공유하면 소통이 되고, 자발적인 참여가 이루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리서치센터가 젊어져야 한다. 물리적인 나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적 사고와 행동이 젊어져야 하고, 역동적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더욱 낮은 자세로 고객, 기업, 수요 부서를 만나야 한다.
주식시장에서 돈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기업을 좇는다. 애널리스트들은 기업들에 혁신을 주문하고, ‘창조적 파괴’라는 말을 즐겨 쓴다. 증권사의 리서치센터가 예외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