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약업체들이 코로나19 백신 개발 이후 수출금지 조치가 곳곳에서 펼쳐질 것에 대비, 생산 거점을 각 대륙에 분산시키려 한다고 2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백신 개발 경쟁의 승자는 정치와 경제 양면에서 압도적인 권력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이에 백신 확보를 위한 지정학적 쟁탈전이 열기를 띠기 시작했다고 WSJ는 진단했다.
일단 백신이 개발되면 세계 각국 사이에서 자국민을 가장 먼저 접종시켜 코로나19 면역력을 갖추게 하려는 경쟁이 펼쳐진다.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이를 ‘백신 국가주의’로 칭하고 있다.
코로나19 백신은 달 착륙에 버금가는 문명의 승리여서 이를 처음 개발한 국가는 역사적 위업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후 개발 경쟁에서 승리한 국가가 다른 나라보다 수개월 먼저 경제회복을 이루고 어떤 나라에 백신을 공급할지 선택권을 갖게 된다.
유럽과 아시아 정부는 자국에서 생산된 백신을 얼마나 비축할 것인지를 놓고 가끔 상반된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개발에 나선 유력 제약업체 대부분은 백신의 유효성이 확인되면 정부가 수출 규제에 나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미 마스크나 치료제 후보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 이에 존슨앤드존슨(J&J)이나 모더나 등 이미 각 대륙에서 동시 생산을 모색하는 곳도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백신이 개발되면 전 세계 의료 관계자용으로 신속하게 수출하고 나서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 공급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 분열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전날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뛰어들었다고 발표한 다국적 제약업체 머크의 켄 프레이저 최고경영자(CEO)는 “근본적으로 전 세계 사람 모두가 예방접종을 하지 않는 한 우리 중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며 ‘백신 국가주의’가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인류가 이처럼 신속하게 세계적으로 백신 개발에 나선 전례가 없고 의료용 유리부터 초저온 냉동고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인 의료비품 공급도 부족한 상태다. 또 여러 백신 후보는 소수 전문가밖에 이해할 수 없는 신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즉 각국의 백신 쟁탈전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유럽연합(EU)은 빌&멜린다게이츠재단과 함께 이런 장애를 극복하고자 80억 달러(약 9조9000억 원)를 모금했다. 또 EU집행위원회(EC)는 이달 초 백신 제조, 빈곤국 분배 등의 이슈를 논의하는 화상 국제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글로벌 의약품 핵심 생산국인 미국과 인도, 러시아 모두 참석하지 않았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이를 뒤집었고 대신 참석한 중국 대사는 “서방 국가가 ‘비난 게임’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고 딴말을 했다.
현재 세계에서 100종 이상의 코로나 백신 개발이 진행 중이며 그중 10여 종은 임상시험 단계에 있다. 이 중 5종을 중국이 차지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우리가 개발한 백신은 글로벌 공공재가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중국 국영 제약업체의 한 임원은 관영 중국중앙(CC)TV와의 인터뷰에서 의료진이나 유학생을 포함해 중국인에게 우선 백신을 공급하겠다는 의향을 보였다고 WSJ는 지적했다.
미국과 영국 정부는 제약업체에 자금을 지원하면서 중국과 유사한 조건을 붙일 가능성이 있다. 세계 최대 백신 생산국인 인도도 수출 규제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