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선대 회장, 이건희 회장, 이재용 부회장으로 이어지는 동안 삼성은 위기에도 과감한 투자를 중단하지 않고 오히려 몰아붙였다. 이를 통해 초격차를 유지하며 글로벌 톱 기업으로 올라섰다.
고(故) 이병철 선대 회장은 1986년 삼성전자 반도체 세 번째 생산라인 착공을 결정했다. 당시 전 세계는 오일 파동으로 어려움을 겪고 D램 시장은 불황이 지속됐던 시기다. 회사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이 결정은 1988년 D램 시장이 대호황기를 맞으며 재평가를 받았다.
이건희 회장은 2008년 4분기 충격적인 7400억 원의 영업적자를 받아든 뒤 이듬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2009년 반도체 부문에 당시로써는 역대 최대인 7조 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에 나섰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제조사들의 출혈 경쟁으로 치킨게임이 벌어졌던 2012년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의 반도체사업 영업이익도 2년 새 반 토막이 났다. 당시 2위 업체였던 도시바는 30% 감산을 단행했다. 이때 이건희 회장은 뜻밖의 결정을 내렸다. 3월에 중국 시안 공장 투자를 발표했고, 7월 경기도 평택에 100조 원을 투입,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모두가 움츠릴 때 과감한 결단을 내린 삼성이 ‘반도체 치킨게임’ 승자의 독식 혜택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코로나19 이후 메모리 수요가 폭발할 것이란 긍정적인 전망도 있지만, 불확실성도 여전히 크다.
게다가 미국과의 갈등으로 화웨이의 스마트폰 생산 등이 위축되면 여기에 D램과 낸드 등 메모리를 공급하던 삼성전자도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 같은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이 부회장은 과감한 투자 결단을 내린 것이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낸드플래시 점유율 1위지만 최근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만만치 않다. 대표적인 곳이 중국 칭화유니그룹 계열사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다. 이르면 올해 말 128단 낸드 양산에 들어간다고 밝히는 등 추격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7~9조 원에 달하는 이번 낸드플래시 투자는 후발주자의 추격 의지를 꺾고, 메모리 호황기를 대비하겠다는 이 부회장의 의지다.
앞서 지난달 21일에는 역시 평택에 10조 원 규모의 파운드리 투자에 나섰다. 파운드리 업계 부동의 1위 TSMC를 따라잡기 위한 과감한 투자다. 이재용 부회장은 파운드리 생산라인 구축과 관련 “어려울 때일수록 미래를 위한 투자를 멈춰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최근 삼성전자의 대규모 투자가 국내에 집중되면서 침체된 국내 경기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고용유발과 시설투자에 따른 협력사 매출 증대 등 한국 경제에 긍정적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최근 각종 수사가 삼성의 투자 행보에 제동을 걸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미·중 갈등, 코로나19 등 악재가 겹친 위기를 극복하는 데 총수의 역할이 크다"며 "이런 시기에 사법 리스크 확대로 경영 활동이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