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누구를 위한 높이 제한인가

입력 2020-06-0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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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현 부국장 겸 부동산부장

‘누구를 위한 높이인가’. 서울시의 아파트 높이 규제 필요성을 역설한 책 제목이다. 서울시 산하 연구조직인 서울연구원이 2017년 6월 발간했다. 책은 도시 경관 관리나 자연ㆍ역사 경관 보호 및 항공기 안전 차원에서 건축물 층수 규제가 필요하다는 서울시 입장을 잘 대변하고 있다. 시내 어디에서든 산과 구릉을 볼 수 있어야 하고, 자연과 어우러지는 스카이라인을 조성하기 위해 한강이나 주요 산 주변에는 저층 건물을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 책은 일반주거지역에 들어서는 아파트의 최고 층수를 35층 이하로 묶는, 이른바 ‘35층 룰’의 든든한 이론적 지원군 노릇을 했다.

층수 규제 완화는 끊이지 않는 지역 주민들의 민원이었지만, 서울시는 '절대 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35층 룰은 시민들이 공론화 과정을 거쳐 만든 헌법 같은 것은 것이라고도 했다.

그랬던 서울시가 최근 아파트 최고 층수 제한에 대한 재검토에 나섰다고 한다. 시장에선 규제 완화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서울시는 20년 뒤를 내다보고 도시계획의 큰 틀을 짜는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서울플랜)'에 주거시설 높이 규제 완화를 포함할지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플랜은 서울의 도시 공간구조와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최상위 도시계획으로 토지 이용ㆍ개발 및 보전에 관한 정책의 기본 틀이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국토계획법)에 따라 5년마다 재정비해야 한다. 서울시는 코로나19 사태로 다소 유동적이기는 하나 올해 하반기 공론화 과정 등을 거쳐 연말께 '2040 서울플랜'을 최종 확정할 방침이다.

35층 룰은 서울시가 2014년 수립한 ‘2030 서울플랜’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플랜에 따라 3종 일반주거지 아파트의 최고 층수를 35층 이하로 제한한 것이다.

서울시는 층수 규제의 핵심을 '공공성'에서 찾는다. 고층 아파트가 일조ㆍ조망권을 독점하는 걸 막고 도시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스카이라인을 만들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문제는 35층 층수 규제가 오히려 천편일률적인 ‘성냥갑 아파트’를 양산하고 도시 경관을 망친다는 데 있다. 물론 35층 룰이 모든 아파트 주동을 35층으로만 지으라는 얘기는 아니다. 35층은 최고 층수일 뿐이고, 35층 이내에서 10층, 15층, 20층 등 다양한 층수로 지을 수 있다. 하지만 용적률이 정해진 상태에서 35층 이상은 짓지 말라고 하면 그만큼 아파트를 옆으로 늘려 지을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비슷한 높이의 아파트가 빼곡하게 들어차 마치 콘크리트 병풍을 쳐놓은 듯한 우스꽝스러운 광경이 연출될 게 뻔하다.

때문에 지금처럼 용적률은 제한해 재건축ㆍ재개발 단지의 과도한 개발이익은 막되, 층수 제한을 풀어 자유롭게 건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낮은 건물을 여러 개 짓는 대신 높은 건물을 적게 지어 바람길과 조망권을 확보하고 남는 땅을 공원이나 도로로 활용하는 게 훨씬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왜 하필 '35층'인가도 논란거리다. 35층이란 숫자에 특별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가 전문가와 시민 의견을 들어 주거지역엔 35층 이하 건물이 적당하다고 결단을 내린 것이다. 35층 룰은 법적 근거도 불명확하다. 국토계획법에 따르면 일반주거지에서 층수 규제는 1종과 2종에 국한된다. 1종의 높이 규제는 최고 4층이고, 2종의 경우 조례(서울시는 25층)로 정한다. 이에 비해 3종 일반주거지는 건폐율과 용적률 규정만 있을 뿐 높이 규제가 없다.

그렇다고 아파트 층수 규제를 아예 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경관 심의와 도시계획 심의를 통해 주변을 의식하지 않은 높이의 건축물에 대해서는 제재를 가하면 된다. 일괄적인 층수 제한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그야말로 '나 홀로' 규제다.

건축물의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35층 룰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역 및 단지 상황에 맞게 적용하면 된다. 한 단지의 '평균 높이'를 35층으로 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면 한강 및 남산 조망권에 대한 공공성도 챙길 수 있고 스카이라인 도시의 건축미도 살릴 수 있다. 아파트 층수 제한은 과연 ‘누구를 위한 규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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