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진 미중②-2] 인류 운명 뒤바꾼 전염병...망각이 부른 비극

입력 2020-06-08 10:30 수정 2020-06-15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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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라인 주에 있는 에센 대학병원에서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코로나19 확진자를 돌보고 있다. 에센/AP뉴시스
▲독일 라인 주에 있는 에센 대학병원에서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코로나19 확진자를 돌보고 있다. 에센/AP뉴시스
전염병은 단순한 질병을 넘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역할을 해왔다.

예일대 역사학자 프랭크 스노든 교수는 “인류의 주된 기억은 군사·정치적 사건이지만 전염병은 역사적 전환을 이루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치명적인 전염병이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건드리면서 역사적으로 전쟁과 혁명을 유발해왔다는 것이다.

기원전 431~404년까지 고대 그리스 패권을 두고 벌어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가 아테네를 무찌르고 승리한 결정적 요인도 다름 아닌 전염병이었다. 아테네 제국을 무너뜨린 역사적 사건이 갖는 중요성에 비해 패배를 부른 요인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아테네의 전세가 기운 것은 펠로폰네소스 전쟁 발발 2년 후, 아테네의 승리가 손에 잡힐 듯한 시점에 역병이 아테네를 강타하면서다. 당시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그 전염병이 에티오피아에서 시작해 이집트와 리비아를 경유, 그리스로 들어왔다고 기록했다.

역병이 돌면서 그리스 인구의 3분의 1이 죽고 마침내 위대한 지도자 페리클레스마저 기원전 429년 전염병으로 사망하면서 아테네의 운명이 바뀌는 서막이 됐다. 페리클레스 사망 이후 아테네를 뒤덮은 선동 정치와 포퓰리즘이 아테네의 운명을 재촉했지만, 전염병이 결정타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역사가들은 이 질병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오래 매달렸다. 1999년 1월 미국 메릴랜드대학은 연례 의학 콘퍼런스를 개최, 아테네 역병을 발진티푸스라고 결론 내렸다. 데이빗 듀랙 박사는 “발진티푸스는 전쟁이나 빈곤 시기에 유행하며 사망률이 20%에 달하고 심한 합병증을 동반한다”고 설명했다.

발진티푸스에 발목을 잡힌 이는 또 있다. 1812년 나폴레옹도 5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를 침략했다가 발진티푸스 발병으로 패배했다. 19세기 초만 해도 나폴레옹이 이끌던 프랑스 군대는 전 세계의 공포 대상이었다. 그러나 하늘을 찌르던 나폴레옹의 위세도 당시 유럽을 휩쓴 발진티푸스에 무너졌다. 따뜻한 지방에서 온 프랑스 군대는 발진티푸스로 전투력이 약해진 반면, 추운 러시아에서는 발진티푸스균이 유행할 수 없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1918~1919년 유행했던 스페인 독감도 1차 세계대전 후 베르사유 조약 협상에서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에 열세로 작용했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연합국 정상들과 회담을 하던 윌슨 대통령은 스페인 독감에 감염돼 체온이 39.4도까지 올라가면서 입원을 해야 했다. 윌슨이 자리를 비운 사이 회담은 독일에 대한 징벌 조치 강화로 흐름이 바뀌었다. 그 때문에 전후에 수립된 독일 바이마르 정권이 궁지에 몰리면서 히틀러의 나치 체제가 등장, 역사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빨려 들어갔다.

역사의 운명을 뒤바꾼 전염병의 힘을 인류는 알고 있었다. 과거 경험을 교훈 삼아 항생제를 개발하고 예방 접종을 실시하는 등 만반의 준비에 나섰다.

그러나 세월이 기억을 집어삼킨 탓일까. 서구 세계는 이런 전염병의 역사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대응에 소홀해졌다. 콜레라와 말라리아가 여전히 빈국을 황폐화하고 최근까지도 에이즈와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사망했음에도 경계를 늦춘 것이다.

전문가들은 스페인 독감에 버금가는 호흡기 바이러스 대유행을 수년간 경고해왔다. 그러나 충분한 준비가 전무했고 세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그런 측면에서 코로나19 사태에서 빛난 한국의 모범 방역은 지난 역사가 중요한 예방접종이 됐다. 코로나19 발발 초기, 한국은 세계에서 중국 다음으로 상황이 심각한 나라였지만 국경통제나 이동제한 없이 사망자가 200명대를 유지하면서 감염병을 잘 통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은 2002~2003년 사스(SARS·중증호흡기증후군)와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겪은 것이 반면교사가 됐다. 메르스 사태 당시 감염자 입원 병원을 미공개하면서 사회적으로 패닉을 초래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질병관리본부를 중심으로 투명성 전략을 택했다. 메스르 사태 이후 동선 추적을 허용한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접촉자 추적, 조기 적발 및 격리도 가능했다.

피터 드로박 옥스퍼드대학 사이드비즈니스스쿨 보건 전문가는 “다른 국가들이 한국으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면서 “검사, 추적, 격리를 입으로 꺼내기는 쉽지만 집행하기는 어렵다. 한국의 강경한 대응은 그대로 베낄 수도 있는 멋진 교훈”이라고 평가했다.

코로나19로 유럽이 초토화된 상황에서 독일도 성공적 대응으로 평가받고 있다. 독일 역시 초기 대응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충분한 의료시설에 고도의 검사 기술을 갖춰 발병 초기부터 대량 검사가 가능했다. 또 강력한 검사, 추적, 격리 체제를 갖추고 있어 단계적 봉쇄완화를 하면서도 상황을 관리할 수 있었다.

경험에서 배우고 이를 잊지 않는 것, 인류의 운명을 지켜내는 유일한 길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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