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록의 이슈노트] 기업은 살기 위해 변한다, 그런데 정치는?

입력 2020-06-15 13:00 수정 2020-06-15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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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DI는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아 그동안 회사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사(社史)를 발간할 예정이다. 2010년 40주년 당시 사사를 발행한 적이 있지만, 최근 10년간은 전혀 다른 회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0년 브라운관 사업으로 시작한 삼성SDI는 최근 10년 사이 배터리 전문 업체로 변모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경쟁이 과열된 LCD(액정표시장치) 시장에서 과감히 철수하기로 했다. 대신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불리는 QD(퀀텀닷) 디스플레이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사업에 각각 뛰어들었다.

우리나라 재계의 역사를 살펴보면, 기업들은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살아남았다. 항상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해 밤낮없이 뛰었고, 고민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87년 신경영을 선언하며 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라는 말은 기업의 성장을 위한 개혁을 상징하는 전대미문의 어록으로 꼽힌다. 이건희 회장은 2010년 경영 복귀와 함께 “앞으로 10년 이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란 말도 남겼다.

오너 3~4세 시대에 들어선 지금도 기업은 매일 변하고 있다. 사업 영역뿐만 아니라 기업 문화에서도 젊은 경영인답게 변화를 빠르게 수용한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취임 후 LG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외부 인재 영입에 주력했다. 강한 LG, 혁신의 LG를 만들기 위해 ‘순혈주의’를 타파하고 조직 내 긴장감을 불어 넣었다. 올 하반기부터는 64년 만에 정기 신입 공채를 없애고 연중 상시 채용체계로 전환했다.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80년 넘게 이어온 무노조 경영 폐지를 공식 선언하는 등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의 변화’를 선언했다.

정치는 어떨까. 수십 년 동안 당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속은 변한 게 하나도 없다. 기업 경영으로 따지면 정부는 전문 경영인이고, 삼성과 LG, 현대차, SK 등 국내 주요 그룹은 오너 경영이다.

기업 총수들이 장기적인 시각에서 투자와 사업 방향을 제시한다면, 정부는 5년 내 단기 성과를 본다. 그러다 보니 서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표퓰리즘 정책을 남발한다.

자본가를 악으로 규정하는 이분법도 수십 년간 통용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난 극복을 기치로 건 21대 국회는 오히려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규제 입법을 줄줄이 예고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오히려 변화를 꺼려하는 듯하다. 진보 정치인들의 의식이 1980년대 민주화 운동 시대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게 대표적인 예다. 시대가 변한 만큼 투쟁 방식이나 접근 방식이 바뀌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 우리편 결속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듯 보인다.

진중권 전 동양대교수는 지난 10일 국민의당이 주최한 정책세미나에서 과거 운동권의 독특한 윤리의식으로 정의의 기준이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조국사태를 언급하며 “586세대는 이미 사회 지배계급으로 특권적 지위를 2세에게 세습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에도 여전히 자신들이 민중 보편의 이익을 위해 싸운다는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수십 년을 변화해 온 기업의 생존 방식을 배워야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한 시도를 통해 변해야 한다. 실패한 경제 논리를 그대로 가져다 쓰고, 그 논리만 고집하면 안 된다. 실패를 인정하고 혁신에 나서는 순간 정치 생명은 끝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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