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준섭의 중국 경제인열전] 송나라의 개혁가, 왕안석(王安石)

입력 2020-06-17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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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고독, 시대를 너무 앞섰기 때문에 실패한 신법(新法)

중국 관료주의의 재정과 조세 징수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저명한 역사가 황런위(黃仁宇)는 그의 저서 ‘허드슨 강변에서 중국을 말하다’에서 송나라 시대 개혁가 왕안석(王安石)의 개혁이란 한마디로 재정상의 조세 수입을 대규모로 상업화하려는 것이었다고 분석하였다.

조세·재정…현대국가의 원칙 제시

즉, 왕안석 개혁의 구체적인 방향은 국가 자본을 활용하여 상품의 생산과 유통을 촉진하자는 주장으로서, 그렇게 경제적 확대가 이뤄지면 세율을 변화시키지 않더라도 국고 수입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왕안석 개혁의 이러한 성격이 현대 국가들이 모두 따르는 원칙으로서, 다만 이것이 시대를 무려 천 년이나 앞서나갔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평가하였다.

왕안석(1021~1086)은 우리에게 ‘왕안석의 신법(新法)’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왕안석은 강서성(江西省) 임천(臨川)에서 군 판관인 부모로부터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기로 근동에 소문이 자자했던 그는 스물두 살 때 진사시험에 합격하고 그 뒤 십여 년 동안 지방행정의 직무에 종사하였다.

뜻있는 사람들 모두가 그와 교류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다

이 무렵 그는 백성들이 겪는 고통과 사회의 심각한 구조적 모순을 몸소 직시하고 그 개혁 방안을 찾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재상 문언박(文彦博)이 그를 인종(仁宗) 황제에게 천거했지만, 왕안석은 등급을 뛰어넘는 기풍을 만들 수 없다며 고사하였고, 구양수(歐陽修)가 간관으로 천거했을 때에는 조모가 연로하다는 이유로 고사하였다. 그러자 구양수는 집에서 봉양할 수 있도록 지방 판관에 임명하였다.

그는 자신의 변법(變法) 사상을 정리하여 인종 때 만 자에 이르는 ‘상인종황제언사서(上仁宗皇帝言事書)’를 황제에게 제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에도 조정에서 그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벼슬을 내렸지만 그는 모두 거절하였다. 사대부들은 모두 그가 공명(功名)에 뜻이 없고 벼슬에 멀리 한다고 생각하며 그와 잘 알고 교류하지 못함을 아쉽게 여겼다.

▲송나라 시대 개혁정치가인 왕안석은 균수법, 시역법, 면행법, 청묘법, 보갑법 등의 신법 개혁을 단행했으나, 신종이 죽고 수구파가 집권하면서 그의 개혁은 모두 물거품이 되는 운명에 처한다.
▲송나라 시대 개혁정치가인 왕안석은 균수법, 시역법, 면행법, 청묘법, 보갑법 등의 신법 개혁을 단행했으나, 신종이 죽고 수구파가 집권하면서 그의 개혁은 모두 물거품이 되는 운명에 처한다.

풍속을 바꾸고 법도를 세우다

인종이 세상을 떠나고 신종(神宗)이 즉위했다. 신종은 평소부터 왕안석의 이름을 많이 듣고 그를 숭모하고 있었던 터라 즉위하자마자 왕안석을 청해 한림학사 겸 시강(侍講)으로 모셨다. 왕안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잇달아 중앙의 참지정사(參知政事)와 재상에 임명되면서 ‘신학(新學)’을 주장하고 변법을 시행하였다. 송나라는 960년에 건국되어 1069년에 왕안석의 ‘신법(新法)’이 시행되었다.

당시 고급관료와 대토지 소유 지주들이 마음대로 토지를 겸병하는 바람에 이들이 소유한 토지는 인종 시대에 이미 70~80%를 점하게 되었다. 더구나 관리의 수는 갈수록 급증하여 건국 이후 100년도 안 되어 두 배로 증가하였다. 이들은 세금과 병역을 면제받고, 반면 백성들의 세금은 갈수록 많아졌다. 게다가 북방의 강국인 금나라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매년 군비는 엄청나게 소요되어, 급기야 군비가 전체 재정 수입의 무려 6분의 5를 점할 정도가 되었다.

특히 송나라는 병사의 수가 너무 많았다. 80만 명의 금군(禁軍:정규군)에 다시 60만 명의 상군(廂軍:지방군)이 더해져 총 140만 명의 군대를 유지해야 했다. 이 규모는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병력 수로서 이 때문에 엄청난 재정 부담이 발생했다. 여기에 송나라는 토지 겸병과 관리들의 상업 경영을 금지하지 않고 있었다. 빈부 격차는 갈수록 벌어졌고 재정은 고갈되었다.

토지 겸병·관리의 상업 경영 금지

왕안석은 부국강병이란 반드시 법률로써 그 실현을 보장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중국에서는 한나라 동중서(董仲舒)가 이른바 ‘춘추 판결’을 제기한 이후 공자(孔子)가 지은 ‘춘추(春秋)’의 어록이 국가의 법률에 우선하는 효력을 발휘해왔다. 하지만 왕안석은 결코 ‘춘추’를 최고의 가치로 설정하지 않았다. 그는 판결은 마땅히 국가가 제정한 법률에 의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예를 들어, 공자는 부모의 복수를 할 수 있도록 했는데, 왕안석은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법이 있는 것이며 사사로이 복수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고 인식하였다. 즉, 법률의 해석이나 사건의 판결에 있어 그는 ‘춘추’에 구애되지 않고 어디까지나 사회의 안정에 그 목표를 두고 있었다.

원래 유가들은 인치(人治)를 중시하고 법치를 경시하였다. 반면 법가들은 법치를 중시하고 인치를 경시하였다. 그런데 왕안석은 인치와 법치를 모두 중시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는 단지 좋은 법률만으로는 국가를 잘 다스리기에 부족하며, 반드시 좋은 관리가 존재하여 법률의 집행을 관철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시역법·균수법…탁월한 계획경제학자

왕안석은 황제에게 ‘풍속을 바꾸고 법도를 세우는’ 개혁정책을 건의해 마침내 부국강병을 기치로 내건 변법이 시행되었다. 그리고 이 변법, 신법의 가장 큰 목표는 대관료지주의 독점과 토지겸병을 억제하는 데 있었다.

그는 중소 상인에 대해서는 시역법(市易法)으로써 농민에 대해서는 청묘법(靑苗法)으로써, 국가가 장기 저리로 자금을 공급하였다. 대상인과 지주에게 부가 편중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또 그는 정부가 지방의 물자를 사들여 다른 지방에 팔아 유통과 가격의 안정을 꾀하는 균수법(均輸法)을 시행하였다. 한마디로 정부가 시장을 대신하였다. 탁월한 계획경제학자였던 왕안석은 변법에 의해 중앙재정 확대를 도모했던 것이었다.

왕안석의 신법은 중앙정부가 이익을 보도록 만든 고급관료 및 대상인 그리고 대지주의 경제적 특권을 제한했으며, 특히 백성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약탈과 착취를 억제하였다. 그리하여 이 개혁정책은 수구파의 완강한 저항과 반대에 부딪혀야 했다.

사실 왕안석의 개혁정책은 그 기반이 오직 황제의 신임 이외에 다른 보장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허약한 것이었다. 더욱이 왕안석이 믿고 개혁정책의 추진을 맡겼던 인물들이 대부분 무능하고 심지어 사리사욕에 빠져 일을 그르치기도 하였다.

개혁의 버팀목이었던 신종이 죽자…

결국 끝까지 왕안석의 개혁정책에 있어서 외롭게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신종이 세상을 떠나자 곧바로 사마광(司馬光)을 위시한 수구파의 재집권으로 이어졌고, 그리하여 신법은 하루아침에 모조리 폐기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왕안석의 신법은 거의 천 년이 지난 최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긍정적인 평가를 받게 되었다. ‘천 년의 고독’, 이것이 왕안석 신법의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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