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제조기업은 고가의 소비재를 개발ㆍ생산하고 판매해 수익을 챙긴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성능과 내구성을 지닌 제품이라도 시장에 내다 파는 기술이 부족하면 수익을 내지 못한다.
상품성이 떨어져도 마케팅과 상품기획력을 앞세워 차를 잘 파는 브랜드가 존재한다. 대부분 미국 차들이다. 뛰어난 상품성을 앞세워 시장에서 인정받는 메이커도 있다. 일본 차들이 그렇다.
한국차는 이 두 가지 능력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일본 차에 버금가는, 일부는 오히려 일본 차를 앞서는 상품성을 지녔으며 뛰어난 마케팅 전략도 인정받고 있다.
글로벌 주요 시장에 뛰어들어 얻어낸 마케팅 기법을 바탕에 둔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구사해 소비자에 접근한 것이 주효했다. 자동차 회사에서 알려주지 않는, 그들의 마케팅 전략을 살펴보자.
◇블라인드 테스트는 '자승자박'=현대ㆍ기아자동차는 세계 시장에서 이른바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지 않기로 했다.
블라인드 테스트는 이름 그대로 자동차의 브랜드를 가늠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린 채, 오로지 성능과 내구성, 상품성을 비교하는 테스트다.
엠블럼을 가리거나 특정 브랜드에 대한 편견 없이 오로지 자동차의 상품성을 테스트한다. 때때로 테스트 참여자의 눈을 가리고 소음을 비교하기도 한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이를 바탕으로 “고가의 경쟁 차보다 소음과 진동 등을 포함한 내구성이 뛰어나다”는 점을 강조하는 마케팅이 한때 성행했다.
이런 블라인드 테스트는 시장 후발주자들이 자주한다. 1등은 결코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지 않는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시행하는 자체가 “난 1등이 아니에요”를 강조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인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아우디가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현대차와 기아차도 이제 공식적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중단했다.
불과 10년 전, 중형세단 YF쏘나타(6세대)를 발매 때만 해도 일본 토요타와 혼다를 경쟁상대로 삼았고, 신차 발표회 때에도 이들을 타깃으로 삼았다.
기아차가 준대형 세단 K7을 출시됐을 때(2010년)에는 토요타와 혼다 경쟁차종을 가져와 비교 테스트하기도 했다.
2013년 2세대 쏘울 출시 당시 “BMW그룹 산하 MINI와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압승했다”고 언급한 바도 있다. 그러나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이후 단 한 차례도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 사례가 없다. 이제 스스로 ‘동급 1등’이라는 자부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현대차 광고모델로 등장한 배우 진선규…왜?= 2018년 현대차 SUV 광고에 배우 진선규가 등장했다. 영화 ‘범죄도시’에 조연급으로 출연해 주목받은 그가 TV 광고에, 그것도 현대차 광고에 등장해 큰 관심을 모았다.
자동차 광고에는 으레 톱스타가 등장한다. 한국지엠과 르노삼성은 최고 인기를 누리는 남자 배우를 종종 중형세단 광고에 등장시킨다. 배우 이병헌이 대표적이다.
수입차의 경우 고성능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해외에서 활동 중인 스포츠 스타를 기용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현대ㆍ기아차가 이들보다 인지도가 낮았던 배우 진선규를 모델로 선정한 무엇일까. 바로 “차보다 광고모델이 돋보여서는 안 된다”는 철칙 때문이다.
이런 마케팅 전략은 글로벌 고급차 브랜드에서 종종 엿볼 수 있다. 다만 해당 시장을 장악했을 때나 가능한 마케팅 전략이다. 여전히 시장에서 후발주자로 남아있다면, 거액을 들여서라도 몸값 비싼 인물을 광고모델로 기용하기도 한다.
◇사전계약 대박 나면 차 가격 오른다?=지난 3월 기아차 쏘렌토가 사전 계약 신기록(1만8941대)을 세웠다. 이 기록은 7월 말 국내 유일한 미니밴 기아차 카니발이 2만3006대를 기록하면서 깨졌다.
이렇게 사전계약 단계에서 큰 인기를 누리는 차들은 공통점이 있다. 향후 차 가격이 오르거나, 옵션을 가득 채운 특별 모델을 내놓으며 값비싼 모델이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연식변경 단계에서 차 가격이 적잖게 인상될 가능성이 크다.
자동차 가격은 출시 직전에 결정된다. 최종 가격은 사전계약 여부를 놓고 시장 반응에 따라 결정된다. 예전에 없었던 사전계약 제도는 자동차 회사로서 소비자 가격을 책정하기 위한 데이터 가운데 하나다.
출시 초기 큰 인기를 누렸다면 가격 대비 성능과 상품성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소비자 관점에서 반가운 일이지만 자동차 회사 차원에서는 안타까운 실수다.
예를 들어 현대차 대형 SUV 팰리세이드의 경우 출시 초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초기 출고 대기분만 1년 치에 달할 정도였다. 월 4000대 생산을 목표로 삼았으나 대기물량만 3만 대를 훌쩍 넘었기 때문이다. 현대차 내부에서는 "가격을 100만 원씩만 올렸더라면…"이라는 반응까지 나왔다. 출고 대기분만 따져도 300억 원 가까운 매출 상승을 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시장에서 인기를 누린 차는 연식변경 때 가격을 상대적으로 높게 올리거나 옵션을 채운 고가의 트림을 내놓는 게 일반적이다. 매달 새로 나오는 판매조건에서도 에누리가 없다.
팰리세이드가 출시 1년여 만에 5000만 원이 넘는 스페셜 버전 ‘캘리그래피’를 추가한 것도 이런 이유다.
거꾸로 초기 인기가 시들하다면 마케팅 전략을 수정한다. 시장에서 가격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는 뜻이므로 가격을 낮춘, 저가형(보급형) 모델을 시장에 투입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