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선거에서 스가 신임 총재와 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은 모두 “일본 사회에 여성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역시 경기부양책 ‘아베노믹스’의 성장전략으로 여성의 사회적 참여 확대를 내세우며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정작 총재 선출 과정에서는 여성 정치인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출마를 희망한 여성 정치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노다 세이코 전 내무상과 이나다 토모미 전 방위상이 이번 총재 선거를 앞두고 출마 의사를 밝혔지만, 입후보 자격인 20명 이상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노다 전 내무상은 아베 총리의 퇴임 발표 직후 “정책 기반의 공정한 선거를 희망한다”고 말했지만, 자민당이 약식 선거를 치르기로 결정한 데다 당내 파벌이 저마다 지지 후보를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그의 바람은 물거품이 됐다.
이나다 전 방위상은 극우 성향으로 자민당 내 지지 기반이 적지 않았지만, 미혼모 지원 정책과 결혼 후 여성이 자신의 성을 그대로 쓰는 법안을 지원하면서 당내 지지를 잃었다. 이나다 전 방위상은 출마를 포기한 후 “진영 주도 정치는 여성 정치인이 총재 선거에 참여하는데 방해물”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자민당의 65년 역사에서 총재 후보로 출마한 여성 정치인은 고이케 유리코 도쿄 도지사가 유일하다. 고이케 도지사는 최초의 여성 방위상이자 최초의 여성 도쿄도지사로 최초의 여성 총리를 목표로 한다. 하지만 그가 실제로 총리가 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전문가와 정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철새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도 문제지만 여성 총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자민당뿐만 아니라 야당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10일 치러진 일본 통합 야당의 대표 선거는 이즈미 겐타 국민민주당 정조회장과 에다노 유키오 입헌민주당 대표의 2파전으로 진행됐다. 1986년 도이 다카코 대표가 사회민주당 대표로 취임한 것과 2016년 렌호 의원이 민주당 대표를 맡은 이후로는 지금까지 여성 정치인이 전면에 나서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여성 정치인이 날개를 펴지 못하는 배경에는 남성 의원이 주도하는 파벌 중심 정치가 있다. 신기영 일본 오차노미즈여자대학 젠더연구소 교수는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여성 정치인에게는) 오랫동안 주요 직책을 맡거나 파벌의 지지를 확보하지 않으면 당내 정치에 참여조차 할 수 없는 유리천장이 있다”며 “이러한 상황은 여성 의제 논의를 방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후지모토 준이치 정치저널리스트도 도쿄신문에 “정계에는 아직도 정치를 남자가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퍼져있다”며 “유감스럽게도 여성 의원은 장식품으로 받아들여진다”고 꼬집었다.
일본 의회에 여성 의원 수 자체가 적은 것도 문제다. 현재 중의원(하원)에서 여성 비율은 9.9%로 국제 평균인 25.1%에 한참 못 미치는 결과를 나타냈다. 한국의 21대 국회 여성 의원 비율인 19%보다도 한참 뒤처진 수치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시행한 성평등 지수 조사에서 일본은 153개국 중 121위를 기록하며 유리천장 실태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신기영 교수는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과 통합 야당이 여성 정치인을 부각했더라면 앞으로 더 많은 여성이 정치인의 꿈을 꿨을 것”이라며 “그들은 그럴 기회를 잃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