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중국제조 2025’의 일환으로 반도체 산업을 꾸준히 육성해왔다. 중국제조 2025란 중국이 2015년 발표한 산업고도화 전략으로, ‘세계의 공장’ 중국에서 그치지 않고 질적 성장까지 이뤄 제조 강대국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양한 산업 부문 중 특히 반도체 산업은 ‘반도체 굴기’라는 이름 아래 정부와 민간 기업이 손잡고 빠르게 성장해왔다.
2014년 중국 정부가 설립한 국책 펀드는 지난해까지 반도체 부문에 약 1400억 위안(약 24조 원)을 투입했다. 여기에 지방 정부 산하 펀드의 투자액까지 더하면 총 투자액은 5000억 위안이 넘는다. 중국은 현재 약 16%인 반도체 자급률을 2025년까지 70%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기술 분야가 미·중 전쟁의 주요 무대가 되고 있는 이유다.
미국은 지금까지 특정 산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하는 데 신중했다. 자유시장 경쟁을 왜곡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첨단 기술의 연구·개발(R&D) 등에 공적 예산을 배정한 적은 있지만, 이번 반도체 산업 지원책처럼 공장 건설 등에 직접 보조금을 투입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앞서 대만 TSMC의 마크 리우 회장은 “미국과 중국 간 보호주의 경쟁이 반도체 업계의 비용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며 양국의 무역전쟁이 반도체 생태계를 붕괴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흔들릴 위기에 놓이자 각국은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반도체 생산 능력 1위 국가인 대만은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직접 나서서 반도체 산업 지원 방침을 밝혔다. 7월 미국 정부가 중국 화웨이테크놀로지에 대한 수출 규제를 발표하자 TSMC는 화웨이로부터의 신규 수주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15일부터는 화웨이에 웨이퍼를 출하하지 않기로 했다.
차이 총통은 24일 “대만 반도체 제조업체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요한 존재”라며 “우리는 이 전략 사업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만 반도체 산업이 문제를 해결하고 입지를 강화한 뒤 변화와 개발을 가속화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차이 총통은 구체적인 목표로 “소재 공급의 현지화와 기술의 자주성, 해외 설비 생산 현지화, 고급 제조 설비의 현지화”를 언급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반도체 산업의 보조금 전쟁이 격화하면 반도체 산업 부진을 겪는 일본도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관측했다. 일본 정부는 과거 엘피다메모리와 르네사스테크놀로지에 공적 자금을 투입했지만, 끝내 부진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이처럼 반도체 산업을 둘러싸고 보조금 경쟁이 격해지면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정 위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당국은 해외 기업이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 보조금 지원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에 WTO의 규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미국 상원과 하원의 법안 초안에는 일본과 유럽 등 동맹국과 공동으로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는 다자기금 설립 방안도 담겼다. 그러나 이에 대해선 국제 사회의 비판을 완화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