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공무원 북한 피격 사망 사건이 서해 군사분계선(NLL) 인정 여부 등 해상영토 분쟁으로 번질 조짐이 보이자 정부가 ‘공동조사’ 카드를 꺼내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북한이 이를 수용할지 불투명한 데다 우리 군 내부에선 영토문제에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불만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실효성 논란이 예상된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인 서주석 국가안보실 1차장은 27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긴급 안보관계 장관회의를 브리핑을 통해 “남과 북이 파악한 사건의 경위와 사실관계에 차이점이 있으므로 조속한 진상규명을 위한 공동조사를 요청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이어 “북측의 신속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시신과 유류품의 수습은 사실 규명을 위해서나 유족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배려를 위해 최우선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공동조사에 대해 '인도주의적' 목적이라고 강조하면서 정치ㆍ군사적 논의를 일축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 발표 전부터, 남북은 NLL을 두고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된 상태였다. 북측이 27일 북한군에 의해 사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 씨를 우리 군 당국이 수색하는 과정에서 북측 영해를 침범했다며 강한 불만을 밝히면서다.
이날 북측은 ‘남조선 당국에 경고한다’ 제목의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우리는 남측이 새로운 긴장을 유발할 수 있는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 무단침범 행위를 즉시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에 우리 군 관계자는 "우리 군이 별도로 우발적 상황을 만들 이유는 없다"며 "해상 수색 활동을 정상적으로 전개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북측이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을 주장한 데 대해선 "우리는 NLL을 실질적 해상경계선으로 여기고 있다"며 북측 주장도 정면으로 반박하기도 했다.
이처럼 북측이 영해 침범이라고 강경한 태도를 보인 것은 남북 간 서해 영해 기준이 다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전협정 당시 육지에선 군사분계선(MDL)을 설정했지만, 서해 해상경계선에 대해선 명확히 매듭짓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북측이 주장한 군사분계선은 1999년 9월 북한이 일방적으로 남북의 해상 경계선으로 선포한 '조선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서해 경비계선'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 분계선은 현재의 NLL에서 훨씬 남쪽으로 설정되었다. 이를 기준으로 할 경우, 남측은 백령도, 연평도 등 서해 5개 도서의 남단 수역을 북측에 고스란히 내어주는 사태가 빚어진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북측이 9·19 합의 이전의 해상 군사분계선을 다시금 꺼낸 배경엔 과거의 NLL 이슈를 재점화하려는 것은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NLL 인정 여부 등 해상영토 분쟁으로 번질 조짐이 보인 상황에서도 정부는 이번 발표에서 이와 관련된 입장을 따로 내놓지 않았다. 북측의 일방 주장에 일일이 대응한다면 오히려 정치적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신에 정부는 ‘중국 당국의 협조’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NLL 문제에 접근했다. 서 차장은 “서해 NLL 인근 해역에서 조업 중인 중국 어선들도 있으므로, 중국 당국과 중국 어선들에 대해서도 시신과 유류품 수습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우리 군 내부에선 영토문제에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불만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김정은은 북미 관계 회복 전까지는 남북 대화·교류 재개 의지를 보이지 않는 상황인 만큼, 실효성 논란도 가세한 상황이다.
한편, 현 공동조사가 NLL 논쟁으로 가열되는 상황에 우려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이어진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측이 시신 수습에 나서겠다고 의견을 표한 상황”이라며 “그런데도 남측이 이 사안에 대해 NLL 논쟁으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킨다면 공동조사뿐만 아니라 사실 규명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반드시 공동조사가 아니더라도 다른 대안을 찾아보는 노력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