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술 글로벌 표준 선점, 리더십 확보의 핵심
“표준을 지배하는 자, 시장을 지배한다.”
세계적인 전기·전자기업인 독일 지멘스가 국제표준에 집중하면서 내건 슬로건이다. 이는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 전쟁에서 표준 선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일례다.
‘세계 대통령’이라 불리는 미국이 3차 산업 시대를 주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표준화 작업’과 ‘표준 생태계 구축’이 있었다. 누가 먼저 표준을 선점하고, 세계 시장에 보급하느냐가 기술 패권을 좌우한다는 의미다.
‘세계가 뒤집힌다’는 말은 곧 기존 질서가 깨진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디지털화(디지털라이제이션·Digitalization)’를 통한 4차 산업혁명(4IR)의 가속화는 기존 질서의 붕괴와 새로운 질서의 확립을 예고한다. 실제로 산업이 변혁할 때마다 주도권을 쥔 자가 바뀌었다. 1차 산업혁명 때는 스페인으로, 2차 산업혁명 때는 영국으로, 3차 산업혁명의 경우 미국으로 주도권이 돌아갔다.
이번 4IR은 인류가 경험했던 그 어떤 산업혁명보다도 더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4IR에서 우위를 선점한 국가가 과거 그 어떤 산업혁명 때보다도 향후 전 세계 경제, 정치, 사회, 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소리다. 그리고 새로운 질서가 다가오는 이 전쟁에서 선점해야 할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 중 하나가 바로 ‘국제표준’이다.
4IR시대 패권전쟁의 승패를 좌지우지할 신기술의 ‘국제표준’은 아직 함락되지 않은 상태다. 대니 로드릭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다가오는 글로벌 기술 균열(The Coming Global Technology Fracture)’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오늘날의 국제 무역 체제가 새롭게 발전되고 있는 신기술을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라면서 현 체제가 현실에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세계무역기구(TO)와 다른 협정에서 나타난, 우리가 현재 가진 국제무역체제는 이 세계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데이터, 소프트웨어, 인공지능(AI)이 아닌 자동차, 철강, 직물의 세계를 위해 고안됐다”며 “그것은 외세의 산업 네트워크 해킹 등 지정학 및 국가 안보, 개인 프라이버시 우려 등 신기술이 제기하는 주요 과제에 직면하기에 완전히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국제표준의 빈자리는 그 중요성만큼 너무 늦어서도, 그렇다고 해서 너무 서둘러서도 안 될 것이다. 이러한 교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처하던 미국과 중국의 신기술 활용 사례에서 배울 수 있다. 미국은 4IR시대의 사생활, 데이터 보안, 디지털 소유권 등과 관련해 명확한 규칙이나 표준을 채택하지 못했다. 랜드리 시그네 애리조나주립대 선더버드 국제경영대학원 교수 등 전문가들은 “일부 주에서 다양한 규제의 틀을 제안하기는 했으나, 국가적 시스템이 없는 것은 AI와 빅데이터의 잠재력을 활용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됐다”고 평가했다. 국가적으로 통일된 표준이 없어 신기술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게 된 셈이다. 중국의 경우는 정반대였는데, 이러한 기술들을 초기에 널리 채택해 효과를 봤으나 개인의 사생활 침해 문제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