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코노미] 넷플릭스 '퀸스 갬빗'을 통해 본 e스포츠 산업

입력 2020-11-20 13:26 수정 2020-12-0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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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코노미는 넷플릭스와 왓챠 등 OTT(Over The Top) 서비스에 있는 콘텐츠를 통해 경제를 바라보는 코너입니다. 영화, 드라마, TV 쇼 등 여러 장르의 트렌디한 콘텐츠를 보며 어려운 경제를 재미있게 풀어내겠습니다.

"체스에는 경쟁만 있지 않아요. 체스는 아름다워요. 제 눈에 먼저 띈 건 보드였어요. 단 64칸으로 이뤄진 하나의 세상이잖아요. 그 안에선 안전한 느낌이에요. 제가 주도하고 통제할 수 있으니까. 예측 가능하고요. 다치더라도 제 탓인 거죠." - '퀸스 갬빗' 3화, 주인공 '베스'의 대사

▲'퀸스 갬빗' 포스터 (사진제공=넷플릭스)
▲'퀸스 갬빗' 포스터 (사진제공=넷플릭스)

자그마한 9세 여자아이 베스를 두고 12명의 고등학생들이 빙 둘러싼다. 여럿이 모인데다 덩치까지 커 제법 위압적이다. 그들이 베스를 둘러싼 건 체스 경기 때문. 베스는 우연히 초대받은 친선 경기에서 12명의 고등학생과 겨루고, 천재적인 재능으로 그들 모두를 이긴다. 더 놀라운 건 베스가 한 번도 체스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윌터 데비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퀸스 갬빗'(The Queen's Gambit, 2020)이다.

베스가 체스를 처음 접한 건 사고 이후 부모를 잃고 맡겨진 보육원에서였다. 매일 밤 신경안정제를 복용한 채 외로운 밤을 견뎌야 했던 아홉 살 소녀에게 체스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베스가 놀라운 재능을 꽃피운 건 열다섯 살. 나이를 속인 채 새로운 가정에 입양되면서다.

마냥 행복할 줄만 알았지만, 새로운 가정에서의 삶 역시 녹록지는 않았다. 아빠는 바람이 나서 집을 떠났고, 엄마는 그 바람에 매일 술을 마셨다. 돈을 버는 여성은 유색인종밖에 없었던 1950년대 미국. 그녀는 상금을 벌고자 지역 체스 대회에 나가 당당히 1등을 거머쥔다. 이후 베스는 점차 이름을 알리며 스타 플레이어가 된다. 그리고 숙명의 라이벌 보르고프를 만나 일생의 대결을 펼치게 된다.

▲'퀸스 갬빗'은 1950년대 보수적인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체스가 남자들의 전유물이던 시대, 베스는 뛰어난 재능과 노력으로 세상의 편견에 균열을 낸다. (출처=넷플릭스 유튜브 캡처)
▲'퀸스 갬빗'은 1950년대 보수적인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체스가 남자들의 전유물이던 시대, 베스는 뛰어난 재능과 노력으로 세상의 편견에 균열을 낸다. (출처=넷플릭스 유튜브 캡처)

흔히 스포츠 하면 근육질 선수들이 자웅을 겨루는 경기를 떠올린다. 하지만 물리적 경쟁 없이 정신적 기량을 겨루는 체스 역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1999년 정식 스포츠로 인정받았고, 2008년 북경 올림픽 시범종목, 2006년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 2010년 중국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돼 세계 마인드스포츠를 이끌고 있다. 사실 체스는 물리적 경기만 스포츠라는 편견의 한계를 뛰어넘어 주류 문화의 반열에 오른 지 오래됐다. 무려 1886년부터 열렸던 월드 체스 챔피언십은 134년의 긴 역사를 자랑한다.

스타 체스 플레이어들의 연봉 역시 높다. 노르웨이 출신의 월드 챔피언 마그누스 칼센 선수는 매년 대회 상금으로만 약 100만 달러(약 11억 원)를 버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연봉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유저 300만을 보유한 '플레이 마그누스(Play Magnus)라는 체스 애플리케이션도 제작·운영하고 있다. 마그누스의 순 자산은 800만 달러(89억1840만 원) 정도로 알려졌다.

▲2018년 11월 28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월드 체스 챔피언십 2018'에서 노르웨이 출신 마그누스 칼센이 승리를 거뒀다.  (연합뉴스)
▲2018년 11월 28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월드 체스 챔피언십 2018'에서 노르웨이 출신 마그누스 칼센이 승리를 거뒀다. (연합뉴스)

최근 엄청난 규모로 성장 중인 마인드 스포츠는 단연 e스포츠다. e스포츠 시장 데이터 전문 미디어 뉴주(Newzoo)는 올해 세계 e스포츠 시장 규모가 11억 달러(한화 약 1조35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보다 15.7% 성장한 수치다. 1조 원 이상의 가치를 자랑하는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아스날이나 미국프로야구(MLB)의 뉴욕 메츠 같은 구단들 역시 새로운 비즈니스 창출을 위해 e스포츠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e스포츠의 성장과 함께 주목되는 건 중국의 부상이다. 반면 한국은 한때 e스포츠 종주국으로 불렸지만, 그 위상을 잃고 있다. 11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e스포츠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 e스포츠 산업 규모(종목사 투자 및 매출 포함)는 1807억4000만 원으로 추산된다. 같은 해 글로벌 e스포츠 규모가 약 1조586억 원인 점을 고려하면 국내 e스포츠 산업 규모는 16.5%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e스포츠 업계에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19일 부산 벡스코에서 국내 최대 게임전시회 지스타 2020이 열렸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온라인으로 열렸다. (조성준 기자 tiatio@)
▲19일 부산 벡스코에서 국내 최대 게임전시회 지스타 2020이 열렸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온라인으로 열렸다. (조성준 기자 tiatio@)

선수들의 처우 문제 역시 e스포츠 산업의 주요 이슈 중 하나다. 그동안 e스포츠 업계에서는 어린 선수들을 대상으로 불공정계약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이를 해결하고자 문화체육관광부는 9월 3일 e스포츠 선수 대상별 표준계약서 3종을 제정해 발표했다. 어린 나이에 선수 활동을 시작해 제대로 된 학습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은퇴 후 사회화 과정이 부족한 것 역시 문제다.

12일 국회에서 열린 '한국 e스포츠 재도약을 말하다' 간담회에서 주요 의제로 선수들의 처우 문제가 다뤄졌다. 이날 팀 다이나믹스 오지환 대표는 “프로게이머 은퇴 후 직업을 가질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60~70%의 선수들은 기본적으로 군대에 가면서 커리어가 중단된다”며 “은퇴 후 재사회화할 수 있는 대안과정을 만들고 지원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제언했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사진제공=넷플릭스)

작품명 퀸스 갬빗은 본래 체스 전략 중 하나를 뜻한다. 그랜드 마스터급의 뛰어난 체스 선수들이 많이 사용하는 전략으로, 백이 폰 하나를 잠시 희생해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수다. 하나를 희생에 승리를 얻는다는 전략은 주인공 베스의 인생을 암시한다.

베스는 불우한 성장 과정을 겪으며 초록색 신경안정제에 중독된다. 고아원에서 정체 모를 약을 매일 나눠줬기 때문이다. 베스는 약물 중독과 함께 뛰어난 체스 능력을 얻었지만, 부작용으로 후유증에 시달린다.

후유증은 유일하게 자신의 뜻대로 컨트롤 가능한 세상이었던 체스마저 무너뜨리기 시작한다. 결정적 순간 나타난 일생의 라이벌 역시 그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과연 베스는 갖은 어려움을 딛고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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