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로 아파트를 사는 것)로 집은 한 채 마련해 ‘벼락거지’(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집값이 오르는 바람에 갑자기 거지 신세가 된 무주택자)는 면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크기 전에 1급지(지역에 따라 부동산 가치를 수치화해 서열화한 부동산 용어)는 못돼도 1.2급지나 1.5급지로는 점프를 해야할 텐데 고민이 많습니다.” (40대 직장인 L씨)
부동산 대란이다. 시장에는 부동산시장 상황을 풍자한 신조어들이 판을 친다. 정부 규제 탓에 서울을 넘어 지방까지 확산하는 집값 불안 때문이다. 소득은 크게 늘지 않는데 집값은 계속 오르면서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이 갈수록 어려워지자 불안감이 분출하는 모습이다. 실제 서울 아파트 한 채를 사려면 12년이 넘게 걸린다는 통계 결과도 나왔다.
KB부동산 리브온에 따르면 올해 3분기 KB아파트 PIR(소득대비 주택가격 비율) 서울 지역 집계치는 12.2였다. KB부동산이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8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PIR은 가구 연간소득을 모두 모았을 때 아파트 매입 시기를 가늠하는 지표다. 수치가 높을수록 내 집 장만이 어려워졌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어려워진 '내 집 마련' 탓에 집을 가지지 못했다는 이유로 '벼락거지', 사는 곳이 다르다고 해서 '호텔거지'(정부가 공급하는 호텔 전세방에 사는 무주택자) 등 서슴없는 비하의 대상이 되고 있다. 주택 사람이 사는 곳을 1급지, 2급지, 3급지 등 순위로 나눠 차등을 둔다.
사회적 계급이 '집 있는 자'와 '집 없는 자'로 구분되는 모습이다. 과거에도 이같은 구분은 이뤄졌으나 최근에는 더 세분화됐다. 과거 주택의 소유 여부만을 놓고 계급을 나눴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어떤 지역에 어떤 브랜드의 아파트를 가졌느냐를 따지는 것이다.
실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한 '부동산 등급표'가 존재한다. 지난달 기준 3.3㎡당 아파트값이 7221만 원에 달하는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6190만 원), 송파구(5091만 원) 등 강남3구는 1~2급지에 속한다. 3.3㎡당 가격이 4000만 원대인 용산구(4912만 원)와 성동구(4455만 원), 마포구(4222만 원)는 2.5~3급지다. 노원구(2931만 원), 강북구(2604만 원), 중랑구(2525만 원), 금천구(2422만 원) 등은 최하급지다.
과거 신분을 나타내던 △황족 △왕족 △중앙귀족 △지방호족 △중인 △평민 △노비 △가축 등 계급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계급 속 또 다른 계급도 존재한다. 3.3㎡당 집값이 1억 원을 돌파한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나 강남 대장 아파트로 꼽히는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학세권에 위치한 대치동 대치래미안 등은 1급지 아파트 중에서도 최고 계급에 속한다.
전문가들은 소득에 따라 자산 격차가 벌어졌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주택 보유 여부가 자산 불평등의 원인이 되면서 '부동산 계급화'가 심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정부 규제로 '주거 사다리'가 사라지면서 이같은 계급론이 고착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민준 국토연구원 연구원은 "주택 보유 여부가 자산 불평등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면서 계급화를 부추기고 있다"면서 "실수요자 위주의 지원과 같은 정책을 통해 자산불평등도를 완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