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원호의 세계경제] ‘십년마일검(十年磨一劍)’ 중국의 반도체 굴기

입력 2021-03-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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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십 년 동안 단 하나의 칼을 갈아왔으나(十年磨一劍), 서릿발 같은 칼날은 아직 써보지 못했네(霜刃未曾試), 오늘에야 이 칼을 들고 세상에 나가니(今日把示君), 억울한 일 당한 사람 어디 없는가?(誰有不平事)” 이것은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의 오언절구 ‘검객(劍客)’이다. 이 시의 ‘십년마일검’이라는 구절을 중국의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입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리커창 총리는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 정부 업무 보고에서 “십 년 동안 단 하나의 칼을 연마하는 정신으로 핵심 과학 기술프로젝트에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양회(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는 예년과 달리 중국의 중장기 로드맵인 ‘제14차 5개년(2021∼2025) 계획’과 ‘2035년 장기 발전계획’이 확정된다. 이러한 자리에서 중국의 총리가 유례없는 표현으로 과학 기술 혁신 능력 강화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이번 중장기계획의 초안에는 중국이 공격적으로 획득하고자 하는 최첨단 과학기술 분야가 명시되어 있다. 중국이 전략적으로 육성할 7대 과학기술은 △인공지능(AI) △양자통신 △반도체 △뇌과학 △유전자 및 바이오 기술 △임상의학 및 헬스케어 △우주 심해 극지 탐사 관련 기술이다. 앞으로 미·중 간 경쟁과 대립이 심화할 분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특히 이 중에서도 필자가 관심 있게 지켜보는 분야는 반도체 관련 기술이다. 반도체는 명실상부 우리나라 제1의 수출품이기 때문이다.

작년 한 해 우리나라의 총수출 규모는 5125억 달러였는데 이 중 약 20%에 달하는 992억 달러가 반도체 수출이었다. 우리나라 수출 2위 품목은 자동차였는데 그 수출 규모는 반도체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374억 달러였다. 반도체가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반도체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가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2015년경부터 지속적으로 전 세계 반도체 생산의 60% 이상을 소비하고 있다. 한·중 간 교역 차원에서 보면, 2020년 우리 반도체 수출의 약 61%를 중국(홍콩 포함)이 수입했다. 그런데 우리 반도체의 최대 수입국이 반도체 국산화에 사활을 걸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중국의 최상위 정치지도자가 전례 없이 비장한 어조로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5년 전 ‘제13차 5개년(2016~2020) 계획’과 ‘중국제조 2025 계획’에서도 반도체 기술의 자체 역량 개발은 강조되었다. 그러나 중대 항목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당시 ‘과학 기술 혁신 2030’의 중대 항목은 △항공 엔진 △심해 연구 △양자 통신 및 양자 컴퓨터 △뇌과학 △사이버 보안 △우주 탐사 관련 기술이었다. 제14차 5개년 계획에서 강조한 7대 분야와 비교해 보면 그간 세상이 어떻게 변화했고 중국 정부의 전략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엿볼 수 있다.

아마도 작년 트럼프 행정부의 화웨이에 대한 연이은 반도체 수출 제재로 중국은 반도체 핵심 기술 확보의 중요성을 절감한 듯 보인다. 미국의 제재로 반도체를 구하기 어려워진 화웨이는 작년 11월 중저가 스마트폰 브랜드인 아너(HONOR)를 매각했다. 올해 화웨이의 스마트폰 출하량은 작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7000만~8000만 대가 될 것으로 시장은 예상하고 있다. 게다가 작년 12월 중국의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SMIC는 미국의 수출통제 리스트에 등재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민해방군 관련 기업 리스트에도 오르며 향후 미국의 금융 제재를 받을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새롭게 취임한 바이든 대통령은 2월 24일 ‘미국의 공급망(America’s Supply Chain)’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관련 부처는 반도체, 배터리, 희토류, 의료장비 및 의약품 공급망을 검토하고 100일 이내에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서명식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무엇보다 반도체 산업을 강조했다. 미국은 반도체 분야의 원천 기술비교우위에 만족하지 않고 국내에 생산 시설을 확충할 것으로 전망된다. 애초에 이 행정명령은 반도체 생산이 대만과 우리나라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 반도체 기업들에는 향후 미국 쪽에 비즈니스 기회가 늘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부분이다. 그러나 동시에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이익과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나라에 공급망을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미국이 기술민주주의(Techno-Democracies), T-10, T-12 등을 강조하다 보면 중국은 최대한 예리한 칼날을 갈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 경우 우리가 중국이라는 최대 시장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부정적인 부분이다.

과연 중국은 미국의 견제 속에서 10년 후 중국산 첨단 반도체라는 칼을 들고 세상에 나갈 수 있을까. 우리 반도체 산업은 얼마만큼의 준비가 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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