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 주변 청소해줘.”
말 한마디에 로봇청소기가 충전기에서 빠져나와 집안에서 ‘항해’를 시작했다. 가는 길 도중 양말을 발견하자 미세하지만 정확하게 방향을 바꿔 조타(操舵)했다. 세탁기 근처를 뱅글뱅글 메워 싸며 먼지를 흡입하곤 다시 되돌아가는 과정까지, 인간의 손은 한 번도 닿지 않았다.
삼성전자가 인공지능(AI) 기술로 사물인식 능력과 주행성능을 대폭 개선한 로봇청소기 ‘비스포크 제트봇 AI’를 27일 출시했다. 이날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삼성디지털프라자 강남 본점에선 비스포크 제트봇 AI로 집을 청소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체험행사가 열렸다.
미스티 화이트, 새틴 핑크, 새틴 블루, 소프트 그리너리, 소프트 썬 옐로우 등 총 다섯 가지 색상으로 이뤄진 신제품의 첫인상은 ‘산뜻하다’였다. 부쩍 따스해진 봄 날씨와도 어울린다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보아왔던 무채색 위주의 로봇청소기 제품과 비교하면 확실히 눈이 즐거웠다.
구동되는 과정에선 “손 탈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아서 집안 공간을 학습하고, 장애물도 저절로 비껴갔다. 청소하고픈 곳을 말하면 그쪽으로 움직였고, 청소가 끝났거나 먼지가 꽉 차면 알아서 충전기를 향했다. 30평대 기준 청소에 약 60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완충 시엔 90분 연속 작동할 수 있다.
실제로 약 40분 넘게 진행된 주행시연 동안 로봇청소기에 사람 손이 닿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청소기제품기획 장휘찬 프로는 “처음 예약 설정만 세팅해놓으면, 2~3주에 한 번 먼지를 비우는 것 빼곤 할 일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는 이번 신제품에 처음 탑재된 인텔의 AI 솔루션과 라이다(LiDAR) 센서 덕분이다. 최대 1m 거리, 좌우 60도까지 주변 지형지물을 입체적으로 감지한다. 앞에 있는 가구가 어떤 종류인지, 장애물이 어떤 물건인지도 큰 범위 안에선 인식한다.
높이가 1cm에 불과한 낮은 장애물까지 놓치지 않고 피한다. 스마트싱스 애플리케이션을 연동하면 청소를 원하는 구역이나, 제외하고 싶은 구역까지 미리 설정할 수 있다.
단순 청소기 역할을 넘어 생활 전반에 도움이 되는 특이기능도 눈에 띄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펫 케어’ 서비스다. 시연 중 '펫 케어' 기능을 시작하자 제트봇 AI가 강아지 인형을 찾아가 실시간 모니터링 영상을 띄웠다. 일정 시간 이상 짖는 소리를 녹음한 음성을 틀자 진정을 돕는 음악도 재생됐다.
회사 측은 기존 로봇청소기 소비자들이 갖고 있던 애로사항을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강조했다.
여타 로봇청소기의 경우 주행할 때 전선과 수건 등 장애물에 걸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 사전 정리·정돈이 필수적이었다. 모서리나 외진 곳은 인식하지 못해 스틱 청소기로 두 번 청소해야 하는 상황도 심심찮았다.
이는 여태까지 로봇청소기가 메인이 아닌 ‘서브청소기’ 위치를 벗어나지 못했던 이유다. 이 때문에 무선 스틱 청소기 시장 비중이 지난 5년간 3배 수준으로 급증한 데 반해, 로봇청소기는 10%에서 12% 성장에 그쳤다.
이번 신제품은 기존 로봇청소기의 약점을 해결해, 메인 청소기 자리를 도맡게 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양혜순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상무는 "제트봇 AI를 가진 소비자의 경우 평일엔 로봇청소기에 맡기고, 꼼꼼하게 청소해야 하는 부분만 주말에 스틱 청소기를 이용해도 충분하다고 본다"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제트봇 제품군을 중심으로 청소기 시장 지배력을 확장해나간다는 방침이다. 제트봇 AI 출시와 더불어 먼지비움 과정을 더욱 간편화한 ‘슬림 비스포크 무선청소기’ 4종도 내달 선보일 예정이다.
또한, 제트봇 라인업 내 물걸레 로봇청소기도 기술 검토 중이다. 양 상무는 "다만 먼지 흡입과 물청소는 다른 기술 기전인 만큼, 건식과 습식을 합쳐놓은 제품 출시 계획은 없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