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인터넷 속도저하’ 문제가 설치기사를 대상으로 한 영업 압박 등에서 비롯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10일 민생경제연구소,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KT새노조, 희망연대노조 KT서비스지부는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인터넷 속도저하 문제에 대한 구조적 원인이 KT 본사의 ‘강제준공’과 ‘실적 부풀리기’ 관행에 있다고 밝혔다. 강제준공은 건물 노후화 등으로 실제 속도가 나오지 않더라도 인터넷을 개통하는 것을 뜻한다.
오주헌 KT 새노조 위원장은 이번 KT 인터넷 속도 저하 문제가 KT 아현국사옥 화재 사건과 판박이라며 “수익 극대화를 위해 인건비와 시설 투자비를 줄인 결과”라고 지적했다. KT가 2000년대 초 만든 자회사 KT서비스를 통해 영업 압박을 높이면서 무리하게 인터넷 요금제 영업이 이뤄졌단 주장이다.
오 위원장은 제 속도가 나오지 않는 노후한 아파트 등에서도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 유치가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초고속 인터넷을 위해서는 망 투자를 늘려야 하는데 망 투자는 줄이면서 판매 압박만 높인다”며 “전혀 속도가 나오지 않는 속에서도 마구잡이로 기가인터넷을 팔고, 편법 영업을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구현모 CEO 취임 이후 허수 경영이 부활하고 있다”며 “이사회에 10기가 인터넷 속도 문제에 관해 내부 청문회를 요구했지만, 본사가 이를 무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 위원장은 내부 제보에 따른 추가 자료가 있다며 이사회가 나서지 않으면 이 자료를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 제출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수도권에 있는 1200세대 아파트 중 27세대의 인터넷 요금제가 잘못 설정돼있고, 지방에 230세대 아파트 중 가입자 27세대가 속도에 이상이 있다는 제보를 내부에서 받았다”며 “KT 본사가 해결 의지를 보이면 본사에 자료를 제공할 의지가 있다”고 부연했다.
이어 “이제라도 이사회가 나서 신뢰할 만한 조사를 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KT는 10기가 상품 이용자 9000여 명을 전수조사해 24명의 오류를 파악하고, 자체적으로 이를 바로잡았다고 밝혔다.
KT는 이 같은 주장에 관해 설치기사들에 대한 영업 압박은 없다고 반박했다. 설치기사의 업무는 말 그대로 설치에 국한할 뿐 추가 영업을 한다고 해서 인센티브 등이 부여되는 구조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KT서비스 직원은 ‘거짓말’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현장에서 영업 압박을 안 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며, 지점장ㆍ지사장까지 영업압박 때문에 잠을 못 잔다”고 했다.
이어 “영업을 안 하면 월급이 줄고, 많이 할수록 월급이 늘어나는 구조”라고 부연했다.
서광순 희망연대노조 위원장도 인터넷 속도 저하의 근원을 ‘영업 압박’이라고 짚었다.
그는 “공익제보자를 색출하려는 회사 측의 탄압 시도로 공동위원장인 제가 나와서 말하는 것”이라며 “지금과 같은 저임금 구조에서 현장에 있는 분들은 어쩔 수 없이 영업을 조금이라도 더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한때 공기업이었던 KT가 다른 통신사들보다 더 무겁게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KT에는 SK텔레콤이나 LG유플러스와는 다른 기대를 하는데 그 기대가 번번이 좌절된다”고 했다.
이어 “10기가 상품의 최저보장속도가 3기가라는 것 자체가 충격이며 이는 불완전판매도 아닌 사기 판매 수준”이라고 일갈했다.
이들은 KT의 노동자 처우 개선에 더해 약관개선 등도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범석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변호사는 “통신사 이용약관에 인터넷 속도 저하와 관련한 모든 문제의 입증 책임이 가입자에게 있어 증명이 까다롭다”며 “보상 금액도 너무 적다”고 꼬집었다.
한 변호사는 정부도 품질 조사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인터넷 및 이동통신서비스 품질조사를 진행할 때 속도가 느리게 나오는 수치를 아예 조사 대상에서 빼버리는 관행을 개선해 보여주기식 조사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이번 기회에 KT를 포함해 이통3사가 제공하는 모든 인터넷, 통신 서비스의 품질을 전수조사하고, 국회 또한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등을 도입해 반복되는 소비자피해를 막아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