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에는 휴일이 없다. 이른 봄부터 시작해 삼복더위가 올 때까지 농사에 매달렸다. 먹는 것도 극히 부실했다. 부지깽이조차 따라나설 만큼 바쁜 농번기를 지나 한여름이 되면 일군들은 볼이 홀쭉하고 허리춤이 헐렁헐렁해진다. 이럴 때 딱 맞는 표현이 ‘진이 빠졌다’다. 진이 다 빠진 상태로 가을걷이에 나설 수 있을까. 보신을 해야 한다. 보신탕, 삼계탕 같은 고칼로리 음식을 먹었다. 이웃들과 천렵을 가서 그런 음식들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진정한 복달임이다.
요즘에도 봄부터 여름까지 일을 하도 많이 해 옛날 농부들처럼 허리춤이 헐렁헐렁해진 사람이 있을까. 복날 삼계탕 매출이 평소에 비해 150% 이상 증가한다는데, 그걸 먹어야 하는 사람은 일꾼이지 주인마님이 아니다. 우리는 일꾼이 아니라 주인마님처럼 덜 움직이고 더 많이 먹고 있다. 풍요와 과잉의 21세기, 30대 이상 성인 3명 중 1명이 비만이고 20%가 당뇨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비만을 신종 전염병으로 규정했을 정도다.
다만 배부른 영양결핍은 있을 수 있다. 탄수화물이나 지방은 과잉이고 비타민, 미네랄, 칼슘은 부족하다. 더위에 지쳤다면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한 과일이나 채소로, 땀을 많이 흘려 기력이 쇠약해진 경우엔 유제품으로 칼슘 보충 정도는 필요하다.
뭘 먹는다고 힘이 나진 않는다. 운동이 답이다. 저녁에 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운동을 하고 돌아와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면, 열대야도 모르고 힘도 좋아진다. 이런 게 풍요와 과잉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복달임이 아닐까 싶다.
유인철 안산유소아청소년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