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내게 최근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환자의 요청이 있었다. “제 아이를 죽여주세요.” 그녀는 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이런 금기어를 입 밖으로 꺼내게 된 것일까? 그녀에게는 이미 일곱 살 난 딸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태어난 직후 아이에게 구개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돌이 지나고서부터 지금까지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수차례의 수술을 받았고 이어진 재활치료로 온 집안이 육체적·경제적으로 풍비박산이 났다고 했다. 그러던 중 둘째가 생겼고 이번에도 아이에게 장애가 있을까 걱정되어 대학병원을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번 아이도 초음파상 같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런 산모의 요구를 들을 때면 의사 가운을 정말 벗어 던지고 싶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아이를 살리는 일인데 아이를 죽이겠다는 그녀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드니, 괴로워서이다. 혹자는 ‘엄마가 되어서, 의사가 되어서,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해?’ 하며 손가락질할 수도 있겠지만, 뱃속 아이의 엄마가 되기 이전에 이미 곁에 있는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에, 하나의 선택을 해야 한다면 그녀의 결정이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아이가 감기만 걸려도 그날 하루는 육아가 열 배는 더 힘든 것 같은데, 장애아를 키운다는 건 아마 백 배쯤 더 힘든 일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그녀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그녀는 우리 병원을 찾지 않았고, 그래서 그녀가 이번 임신을 유지했는지 종결했는지 알 길은 없지만, 어떤 결정을 하였건 그녀가 후회하지 않기를, 아파하지 않기를, 같은 엄마로서 간절히 바란다.홍유미 전북대병원 산부인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