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14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 또 올렸다. 연 1.25%로, 코로나19 사태 이전의 금리 수준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기준금리 1.50%도 긴축으로 볼 수 없다”며 연내 추가 인상을 시사했다. 그만큼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상황으로, 시중에 풀린 돈을 회수해 물가를 잡겠다는 강력한 의지다.
그러나 이날 기획재정부는 14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계획을 내놓았다. 코로나 피해가 큰 자영업자 지원을 위한 설 연휴 이전의 ‘원포인트’ 추경이라고 한다. 자영업자들의 절박한 사정을 감안해도, 새해가 시작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1월의 추경 편성을 밀어붙이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것도 3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돈을 풀겠다는 의도다. 작년의 초과세수를 활용하는 추경이라는데, 4월 세입·세출 결산이 이뤄지기 전에 쓸 수 없는 돈으로 재원 대부분을 적자국채 발행으로 조달해야 한다. 국가재정법은 세계잉여금을 먼저 국채부터 갚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것도 무시하고 계속 나랏빚만 늘리는 추경이다.
한은과 기재부가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통화는 조이고 재정은 풀겠다고 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재정·통화정책의 상호보완적인 ‘폴리시 믹스’라고 주장하지만, 말이 안 된다. 목표부터 어긋난 ‘미스 매치’다. 통화당국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는 마당에, 재정당국은 사상 초유의 1월 추경 편성으로 시중유동성을 늘리면서 따로 노는 양상이다.
지금 불확실성 가득한 우리 경제상황에서, 한은의 선제적 기준금리 인상을 통한 통화긴축과, 정부의 거듭된 재정확대 가운데 어느 쪽이 경기 회복을 앞당길 수 있는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방향부터 반대인 통화·재정정책으로는 어떤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고 부작용만 우려될 뿐이다.
돈이 더 풀리면 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져 금리인상 효과는 무력화된다. 시장금리가 더 올라 물가도 못 잡고, 막대한 가계부채의 이자부담은 더 커진다. 부동산값 폭등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빚낸 사람들이 받는 타격을 받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더 심각한 것은 코로나 위기로 인해 불가피하게 부채를 늘린 서민과 소상공인 등 금융 취약계층, 영세 중소기업들에 피해가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최근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다시 “멀리 있던 회색 코뿔소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며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충분히 예상되는데도 간과하기 쉬운 잠재적 위험요인을 뜻하는 회색 코뿔소는 지난해 10월 홍남기 부총리가 언급했다. 가계부채 위기와 미국의 금리인상, 인플레이션 가속과 글로벌 공급망 교란, 미·중 무역분쟁 격화, 코로나 상황 악화 등이 중첩되고 있다. 안정적이고 일관된 거시경제 운용으로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데, 재정과 통화정책 방향부터 엇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