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우화 ‘외눈 암사슴’(The One-Eyed Doe)은 요즘 주식 투자자들뿐만 아니라 정치권에 매우 적절한 경고를 한다.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곳에서는 돌발 악재가 튀어나오고, 큰 혼란을 줄 것으로 예상했던 일들은 별일 없이 지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일촉즉발의 러시아 디폴트 위기는 유로화로 발행된 두 종류의 국채 이자 1억1700만 달러(약 1428억 원)를 지난주 달러로 지급하며 일단 급한 불을 껐다. 물가 급등으로 경제난을 겪고 있는 이집트가 국제통화기금(IMF)에 도움을 요청하는 등 신흥국 도미노 경제 위기가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지만, 당장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지 않아 보인다.
걱정은 다른 데 있다. 치솟는 유가다. 작년 하반기부터 연말까지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줄곧 배럴당 60~80달러대 박스권을 형성했다. 이 때문에 시장 참여자들은 유가에 대해 “비싸지만, 아직 견딜 만 하다”며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경기가 좋아지는 신호라며 애써 불안을 감췄다.
과거 주가와 유가는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고, 두 자산이 상승하면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바탕에 깔려 있다는 논리다. 큰 흐름으로 보면 수긍할 수 있는 얘기다.
그러나 꿈보다 해몽에 가깝다. 현실은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을 걱정해야할 처지다.
시장 주변에는 ‘회색 코뿔소(grey rhino)’가 여전히 어슬렁거린다. 2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5.30(2020=100)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7% 올랐다. 우리나라의 교역조건을 나타내는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지난달 전년 동월 대비 6.8% 하락했다. 10개월 연속 내림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에 따른 석유류 공급 문제로 국제유가는 배럴당 110달러를 넘나든다. 주요 곡물 생산국인 우크라이나 영향으로 곡물값도 불안정한 상황이다. 부동산시장도 거품 붕괴론이 고개를 든다.
잿빛 시장 환경에서 미국의 강도 높은 긴축은 세계 경제와 시장에 큰 부담이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최근 열린 전미실물경제협회(NABE) 콘퍼런스에서 연준이 너무 높아진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신속히” 움직여야 한다면서, 필요하면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연착륙’하겠다는 계획에 의구심을 갖게 하는 발언이다. 연준은 지난 16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당장 우리나라의 통화정책(금리인상 압박)에 영향을 미친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대출자 부담이 커진다. 가계대출 전체 잔액 가운데 약 76%가 변동금리 대출이다. 한은에 따르면 금융기관의 대출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면 가계의 연 이자 부담은 대출자 1인당 평균 16만1000원이 늘어난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빚투(빚내서 투자)로 무리해서 부동산 사는 건 힘들고 위험해진다. 거래는 줄고 집값 하락 압력도 커질 것이다. 이는 곧 경제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릴 때마다 신흥국은 달러가 빠져나가 몸살을 앓았다. 2013년 긴축발작(Taper Tantrum)이 대표적이다. 외국인은 올해 유가증권시장에서만 5조 원 넘는 주식을 팔았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국민의 53.8%가 반대한다는 대통령 집무실 용산 국방부 이전에만 혈안이다. 윤 당선인이 이런 꽉 막힌 인식으로 과연 나라를 제대로 이끌 수 있을지 하는 걱정마저 들게 한다. 자신의 주장만 되풀이할 뿐 정국을 큰 틀에서 풀겠다는 책임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는 생산적인 정치를 기대하기 어렵다.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정치가 계속되면 나라가 흔들리고, 국민이 불행해질 뿐이다. 문재인 정부가 그랬다. 시장과 동떨어진 고집불통 정책에 서민은 벼락거지가 됐고, 기업들은 글로벌 무대에서 뒤처졌다.
윤 당선인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 측근들이 점령군 행세에만 열을 올린다면 서민과 나라경제를 ‘외눈 암사슴’으로 내몰 뿐이다.